정비사업장에서 조합장 해임 총회 소집 기준을 ‘조합원 5분의 1 이상 요구’로 강화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동안 조합장 해임 갈등으로 사업진행이 지연되는 정비사업장이 많았던 만큼,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업 진행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 그래도 문제가 많은 재건축 조합 운영에 대한 견제 장치가 약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서울 용산의 한 건물에서 바라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일대 재개발 추진 지역의 모습 / 연합뉴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초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법안은 지난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회부 순서에 따라 상임위 논의가 이뤄지는 만큼, 이번 개정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내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존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소집 가능했던 조합임원 해임 총회는 조합원 5분의 1이상이 요구해야 열리는 것으로 강화된다. 의결 조건은 조합원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동의로 기존과 동일하다. 조합장 등 조합임원 해임 총회가 성사되기 위한 문턱만 높아진 것이다.

제45조 제 7항에 ‘시공자의 선정 및 변경을 의결하는 총회의 경우 조합원의 과반수가 직접 출석해야 한다’는 내용도 새롭게 추가됐다. 현행법은 조합원의 10분의 1 이상이 직접 출석해야만 총회 의결이 가능하지만, 창립총회, 사업시행계획서의 작성 및 변경, 관리처분계획의 수립 및 변경을 의결하는 총회 등은 조합원의 5분의 1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번 법안은 기존 조합장 등 조합임원 해임 총회 소집 요건과 시공사 변경 총회 의결 요건이 지나치게 낮아 정비사업 지연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에서 시작됐다. 발의안에는 “조합임원 해임 총회 소집 요건이 지나치게 낮게 구성돼 정비사업 지연 수단으로 남용되는 등 불필요한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돼 있다.

김윤덕 의원실 관계자는 “일반적인 총회 소집 기준이 조합원 5분의 1이상 동의인 것과 달리, 그동안 조합장 해임 총회 소집 기준은 일반적인 총회 소집 기준의 절반 수준이었다”면서 “낮은 기준으로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조합장 등 임원진 해임 문제로 사업이 지연된다는 민원이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정비사업장 곳곳에서는 조합장 해임을 두고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6구역이 대표적이다. 방배6구역은 지난달 시공사 입찰 제안 내용이 실제 사업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물어 조합 임원진들을 해임하고, 시공사인 DL이앤씨와의 계약도 해지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조합임원들이 비리 행위를 하면 해임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낮은 기준 탓에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조합임원 해임 문제를 두고 갈등이 있는 정비사업장이 많다”면서 “조합임원 해임 총회 소집 요건을 20%로 올리고, 시공자 선정 및 변경 의결 조건도 과반수로 정한 건 적정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강화된 기준으로 조합 임원진 제동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과거 조합장을 해임한 경험이 있는 서울 시내 한 재건축 단지 조합 관계자는 “기준을 강화한 이유는 이해가 가지만, 조합원들의 의견 표현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이주가 진행돼 조합원들이 뿔뿔이 흩어진 사업장에서는 조합원 10분의 1 동의도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화된 기준이 정비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보면서도,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선 정비사업 일정 자체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조합 임원 해임 요건이 높아지면 사업 진행 절차가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높아진 총회 문턱이 만행을 저지르는 조합 견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고 교수는 “속도감 있는 정비사업 추진이 목적이라면, 장단점이 각각 뚜렷한 총회 기준 상향보다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을 통해 정비사업 일정 자체를 단축시켜야 한다”면서 “조합설립승인 후 사업승인까지 3년이 걸리는 걸 1년으로 줄이는 식으로 시간을 줄이는 게 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