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국 부동산을 배경으로 한 보드게임이 발매돼 시중의 이목을 끈 데 이어, 최근에는 청약을 코드로 후속편이 나왔다. 흥미롭다는 반응과 함께 부동산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사회현상 자체가 ‘블랙 코미디’ 아니냐는 쓴웃음도 나온다.

해즈브로 코리아 제공

9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해즈브로 코리아는 지난달 ‘모노폴리’ 게임의 확장판 ‘K-청약’을 내놓았다. 모노폴리는 한국의 유명 보드게임 ‘부루마불’의 원조다. 2~8명의 플레이어가 보드의 땅을 사들이고 그 위에 별장, 빌딩, 호텔 등 건물을 지은 후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두 파산할 때까지 해당 부동산에 대한 사용료를 받는 게임이다. 해즈브로 코리아는 모노폴리의 한국 내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는 정식 수입 업체다.

‘K-청약’은 모노폴리처럼 토지를 사들이고 건물을 짓는 방식이 아니라, 주택·아파트를 청약받는 방식으로 모양새를 바꿨다.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청약에 당첨됐을 경우에는 게임 속 ‘주택청약통장’에 예치금이 많을수록 청약 당첨 확률을 높게 해준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기존 모노폴리에서 가장 가치가 높았던 호텔 카드는 ‘K-청약 아파트’로 갈음됐다.

또 모노폴리에서는 특정 칸에서 카드를 뽑아 카드가 지시하는 대로 수행해야 하는데, ‘K-청약’에서는 한국의 다양한 부동산 정책과 규제를 반영해 ‘K-청약 찬스카드’ ‘부동산 정책카드’로 표현됐다.

‘K-청약 찬스’ 카드로는 ▲다자녀 특별공급 ▲이전기관 종사자 특별공급 ▲생애최초 특별공급 등이 있다. 이를 통해 원하는 도시를 구매할 권리를 얻거나, 첫 주택을 무료로 세울 수 있다. ‘부동산 정책’ 카드로는 ▲임대료를 한 단계 이전 수준으로 낮게 낼 수 있는 ‘전월세 상한제 실시’ ▲그 자리에서 주사위 순서가 두 번 지나는 동안 움직일 수 없는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은행에 돈을 납부해야 하는 ‘취득세 납부’ 카드 등이 있다.

해즈브로 코리아는 지난해에도 모노폴리의 오리지널 버전을 ‘모노폴리 클래식’의 이름으로 리뉴얼해 내면서, 일종의 확장팩으로 ‘K-부동산’ 카드 팩을 함께 넣어 눈길을 끈 바 있다.

‘K-부동산’에서는 소유한 건물 수만큼 은행에 세금을 내야 하는 ‘종합부동산세 납부’, 소유한 도시와 주택 수만큼 세금을 내는 ‘재산세 납부’ 등의 카드는 물론 임대료를 절반만 내도 되는 ‘착한 임대인 찬스’, 은행에서 일정액을 받을 수 있는 ‘긴급 재난지원금 카드’ 등이 있다. 카드를 통해 실제 부동산 법률과 관련 시사 상식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반향을 일으켰다.

해즈브로 코리아의 이종환 차장은 “회사 동료가 ‘어렸을 때부터 부동산을 알았어야 했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에서 착안해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며 “특히 ‘K-부동산’의 경우 자식에게 별도의 교육 없이도 놀면서 자연스럽게 부동산이나 경제 원리를 가르칠 수 있어 크게 만족했다는 피드백이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이미 부동산 관련 제도의 큰 틀은 두 편에 많이 녹여낸 만큼, 후속작은 ‘부동산 경매’ 등의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취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게임 외에도 최근 부동산을 소재로 한 게임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 기반의 부동산 게임들은 실제 부동산을 가상 공간에 구현해 부동산을 매매하면서 시장가를 형성하고 있다.

부동산 게임 중 국내에서 개발한 ‘메타버스2′의 경우, 지난 1일 현재 게임 내 서울시 자치구의 개별 평균 공시지가가 최대 1.68달러까지 상승했다. ▲송파구 1.68달러 ▲강남구 1.29달러 ▲서초구 0.64달러 ▲중구 0.87달러 순인데, 미국 뉴욕의 산하 5개 행정구역인 ▲맨해튼 ▲퀸스 ▲브루클린 ▲브롱크스 ▲스태튼아일랜드 등이 0.17~0.70달러 선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가격이다.

지난해 호주에서 출시된 어스2의 경우에도 한국인 투자자들은 100억원이 넘는 가상 부동산을 매입해 ‘익명’을 제외하곤 게임 내 부동산을 가장 많이 매입한 국적으로 알려졌다. 어스2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 전 세계의 땅은 픽셀(100㎡)당 0.01달러였는데, 지난달 초 기준 한국이 평균 36.3달러, 프랑스와 일본이 평균 8.6달러선이다. 어스2는 앞으로 자원채취와 상업활동이 가능하도록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부동산 게임 열풍을 두고 “그동안 부동산에 대한 정보가 한정적이었는데, 이런 게임을 통해 자신의 자산과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한편으론 현실에서 부동산을 사기 어려워졌으니 게임에서나마 대리만족해야 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또 너무 어린 어린이에게는 다른 가치보다 부동산이 만능이라고 인식될 수 있어 우려스러운 면도 있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기반 부동산 매매 게임 '어스2'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