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단지를 임대단지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사업성을 떨어뜨려 건설사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집값이 많이 오른 여파로 과거 비인기상품이었던 민간임대주택의 선호도가 높아진 영향이다. 선(先)임대·후(後)분양으로 우선 임대수익을 얻고, 추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가 심사를 피해 제값을 받고 분양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엘 조감도. /롯데건설 제공

24일 건설 업계에 따르면 이달 중 입주자를 모집하는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엘’은 당초 분양단지로 계획됐으나 임대주택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하 3층~지상 36층, 4개동, 전용면적 84㎡ 총 715가구의 준공 규모는 그대로 두고 공급방식만 분양에서 임대로 전환했다.

용인시 고시를 보면, 이 단지는 지난 2월만 해도 민간분양아파트로 주택건설사업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불과 넉 달 뒤인 6월에 민간임대아파트로 사업계획을 변경해 승인을 다시 받았다. 이곳은 옛 롯데마트 용인 수지점 부지로, 시행사 ‘더시너지1’이 2019년 2000억원에 땅을 매입해 개발 중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분양가 통제가 강한 사업지일 경우 임대로 사업 방식을 변경하면 사업 초기 임대수익을 올리고 추후 분양가 통제 없이 분양할 수 있어 사업성이 더 커진다고 보고 있다. 임대 기간이 끝난 뒤 분양하면 분양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어서다.

대방건설도 회사가 보유한 서울 은평뉴타운 3-14블록 부지에 공급 예정인 ‘은평뉴타운 대방디에트르(가칭)’를 분양이 아닌 임대로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을 받았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로부터 2014년 834억원에 매입해 분양을 준비하던 곳인데, 올해 5월 민간임대로 사업방식을 바꿔 은평구청으로부터 사업계획승인을 받았다. 대방건설 관계자는 “분양가 규제 등을 고려했을 때 분양보다 임대 공급의 사업성이 낫다고 판단했고, 임대로 공급하더라도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과거 과천에서도 분양가 통제가 사업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선임대 카드’를 꺼낸 사례가 있다. 지식정보타운 ‘푸르지오 벨라르테’를 공급한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임대 전환을 검토한 바 있다.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3.3㎡당 2600만원대로 분양가를 제시했는데, 과천시 분양가 심의위원회가 3.3㎡당 2205만원으로 분양가를 책정하자 임대 전환을 검토한 것이다. 시세보다 지나치게 낮은 분양가로 적자 시공이 발생한다는 이유였다. 이 단지는 재심의를 거쳐 분양가가 3.3㎡당 2372만원으로 바뀌며 임대 전환 없이 분양됐다.

또다른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 한남’이 있다. 대신증권 자회사 대신에프앤아이(대신F&I)는 나인원 한남의 분양가를 3.3㎡당 평균 6360만원에 신청했다가 HUG로부터 분양보증을 거절당했다. 3.3㎡당 4700만원대를 제시한 HUG와의 분양가 격차가 좁혀지지 않자, 대신에프앤아이는 2018년 결국 선분양을 포기하고 임대 후 분양을 선택했다. 분양 당시부터 임차인들에게 3.3㎡당 6100만원의 확정 분양가를 공지했고, 올해 ‘조기 분양’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3.3㎡당 6100만원에 분양을 마치며 ‘임대 후 분양’ 전략이 성공했다.

나인원 한남의 사례는 초고가 주택이라는 특수성이 있었다면,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엘의 사례는 최근 민간임대주택의 인기가 급증한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간임대주택의 수요가 미진하다면 건설사가 쉽사리 ‘임대 후 분양’ 카드를 꺼낼 수 없어서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선 민간임대주택의 위상 상승이 돋보이는 모습이다. 지난 5월 청약을 받은 10년 민간임대아파트 ‘안중역 지엔하임스테이’는 평균 경쟁률 286대1, 지난 3월 공급된 ‘신아산 모아엘가 비스타2차’는 평균 경쟁률 187대1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