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건설업 생산체계 개편의 핵심인 업종간 영역 폐지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업역 폐지를 두고 종합건설업계와 전문건설업계가 기(氣)싸움을 펼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폐지가 예정됐던 시설물유지관리업(시설물업)이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시설물업은 건설업 분야 중 빌딩 등 완공된 시설물들을 일상적으로 점검·정비하고, 복구·개량·보수·보강하는 공사를 담당하는 업역이다.

전국 시설물유지관리사업자와 종사자들이 지난 7월 1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시설물유지관리업종 폐지 반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건설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시설물업을 폐지하려던 국토부와 종합·전문건설업계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시설물 업계가 이와 같은 움직임이 반발하면서 권익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했고, 권익위원회가 상당 부분 이를 받아들여 권고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국토부에 오는 2029년 말까지 시설물업 폐지를 유예하고 유예기간 동안 시설물 업계 의견을 더 수렴하면서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관계자는 “국토부가 시설물 업계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다른 업종 단체들의 여론만 수렴해서 일방적으로 폐지를 결정했다”며 “업역 폐지 시 업체들이 다른 업역으로 흩어질텐데, 적합한 선택지가 없어 엉뚱한 업종으로 흡수될 경우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반발에도 국토교통부가 시설업종 폐지를 추진했던 이유는 건설업계의 생산성을 높이고, 업계의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줄이기 위해서다. 지금은 종합건설업·전문건설업으로 업역이 나뉘어져있지만 이를 폐지해 업체간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다. 국토부는 단계적으로 오는 2023년 말까지 시설물 업종을 폐지하고 여기에 속해 있던 업체들은 종합·전문 건설업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그간 시설물업은 업역이 넓어 전기·수도·페인트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다뤄왔다. 이 때문에 ‘만능면허’라는 비판이 일었던 데다가 업역을 폐지하면 모든 건설업체가 시설물업과 같은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지가 추진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들도 일견 국토교통부의 개편 취지에 동의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빌딩을 만든 사람이 건물의 유지·수선 업무를 못할 리가 없다”면서 “업종이 효율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인데 변화가 싫은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라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설물업 협회의 반대가 거센데, 사실 업종은 없어져도 업체들로서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되는 것”이라며 “업체의 문제라기보다 존치가 위협받을 협회의 문제로 보는 게 맞다”고 했다.

국토부는 권익위원회의 뜻은 알고 있지만 재심의 과정을 통해 일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권익위는 위법·부당할 경우 ‘시정공고’하거나 신청인의 이의제기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의견표명’을 한다”며 “이번 의결의 경우 의견표명이라 구속력이 있지는 않으며 권고에 가까운 메시지”라고 했다. 이어 관계자는 “권익위의 의견서를 검토한 결과 재심의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재심의 요청서를 제출해놓은 상황이며, 일단 최종재심 결과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국토부는 시설물 업계의 주장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생산체계 개편이 본격화된 지난 2018년 이후 꾸준히 업계 여론을 수렴해 업계와 합의 후 노사정위원회까지 거쳤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권익위 의결 이후 발표된 지난 1일 행정예고안을 보면, 시설물 업계의 요구 17가지를 반영했다”면서 “종합·전문건설업계 측에서는 시설물 업계가 원하는 것을 너무 많이 들어준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낸다”고 했다.

국토부는 시설물업 업종전환을 당초 전문업으로만 한정했지만, 시설물협회 의견을 반영해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 3개로 업종전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업종전환을 할 때 시설물 업체의 실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종전 실적을 토건을 제외한 토목·건축 업종의 실적으로 모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가장 문제가 되는 등록기준도 업체들의 부담을 덜도록 기술자 보유기준·공제조합 추가 의무 예치금 등도 유예하기로 했다.

한편 시설물업 협회 관계자는 국토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권익위 의결 이후에도 국토부가 업역 폐지를 강행하는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시설물업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있는데, 문제가 있으니 빨리 전환시켜버리겠다는 뜻 아닌가”라고 말했다. 시설물업 협회는 이에 지난 15일부터 세종 국토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