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 최고 건설사였다. 주택·토목·플랜트 분야를 막론하고 이름 좀 있다 하는 건설회사치고 이 회사 출신의 핵심 인력이 없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얻은 별칭이 ‘건설 사관학교’였다. 시공능력평가 6위의 대우건설의 ‘그때’는 그랬다.

이제 이 회사는 2조1000억원의 ‘몸값’을 내겠다는 중흥그룹을 세 번째 주인으로 맞기 직전이다. 첫 주인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맞은 지 15년 만이고, 다시 매물로 나와 두 번째 주인인 산업은행으로 편입된 지 11년 만이다.

대우그룹의 해체로 그룹 계열사란 위상이 깨졌다. 당시엔 생경했던 워크아웃도 겪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회사를 지켜냈던 건 마지막 ‘대우맨’들의 자부심이었다. 모그룹과는 결이 또 달랐던 대기업과 은행의 지휘 틀 아래에서 업계 위상을 이어간 그들은 중견건설그룹의 품 안에서도 상처 난 자부심을 지켜낼 수 있을까?

서울 대우건설 을지로사옥 전경.

건설명가의 상처 난 자부심

건설업계 믿음 가운데 하나는 회사는 망해도 사람은 남는다는 거다. 다른 업종과 달리 사람에서 시작돼 사람으로 끝나는 속성이 짙어서다.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도, 주인이 바뀌고 수시로 매각설에 시달려도 남은 이들은 권토중래를 꿈꾸며 제자리를 지켰다. 사람만 있으면 다시 옛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과 자부심은 위기 때마다 힘든 시기를 버텨낼 힘이 됐다.

하지만 제대로 된 주인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런 힘도 조금씩 빠졌다. 대우건설이란 회사 이름에 걸었던 자부심도 때론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인수 기업은 늘 독자 경영과 인력 유지 등을 약속하지만 M&A에서 이런 공언은 사실상 공약(空約)이나 다름없다. 한동안은 물리적 결합과 조직 융화를 위해 인수 당시 약속 사항을 이행하지만, 이내 경영에 간섭하고 조직개편이란 이름으로 구조조정의 칼을 뽑아 든다.

대우건설이 금호아시아나에 인수됐을 때도, 산업은행에 편입됐을 때도 겪었던 일이다. 인수→통합→복속→계열화→구조조정의 프레임을 가진 M&A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중흥 역시 대우건설 인수를 앞두고 고용안정과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인수라고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남은 이들에게 대우건설이란 이름은 상처만 남은 자부심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이 돼야 할 피할 수 없는 길

대기업과 은행에 이어 중견건설그룹을 세 번째 주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마지막 대우맨들의 저항도 노동조합을 통해 표출되고 있지만, 대우건설로서는 언젠가 어떤 기업이든 새 주인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대우건설로선 어떤 ‘이름’의 회사가 인수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이들에겐 인수하는 기업이 마지막 주인이 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덩치 크고 이름 있던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승자의 독배’를 마신 전철이 있어서다.

재계나 건설업계가 이번 M&A를 불안하게 보는 이유가 인수 기업의 중량감에서도 있지만, 대우건설을 얼마나 오래 끌고 갈 수 있을 지에서도 나온다.

중흥은 금호 때와 달리 금융권 자본 조달 없이 자기 자본으로 인수 대금을 충당하겠다고 했지만 2조원이 넘는 적지 않은 자금이 짧은 기간에 기업 인수에 집중투입될 경우 오히려 경영 리스크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대우건설에 남은 잠재적 부실과 겹쳐 코로나 시대의 불확실한 해외 수주 여건, 국내 시장에서 겹치는 사업 포트폴리오 등으로 이번 인수가 ‘탈'이 날 경우 대우나 중흥 모두 전에 치른 홍역을 또 한차례 겪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