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서울시가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시점을 ‘안전진단 통과' 후로 앞당기기로 하자, 서울 주요 재건축 시장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에서는 ‘거래절벽’ 현상이 가시화하면서 불만과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단지들은 호가를 올리고 있는 분위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새 규제가 서울 주택 시장을 또한번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지난 9일 주택 정책 협력 간담회를 열고 투기과열지구(현재 서울 전역) 내 재건축 단지는 ‘안전진단 통과’ 이후부터 조합 설립 사이 시·도지사가 정하는 ‘기준일’ 전에 아파트를 사야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시행 단계는 기본계획수립▶안전진단(재개발은 없음)▶정비구역지정▶추진위원회 설립▶조합설립▶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계획인가▶착공 및 분양▶입주 및 청산 순서로 진행된다.

현재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이후부터,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부터 조합원 지위 양도를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자체가 제한 시점을 사업 초기 단계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시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에 지위 양도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국토부는 이를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9월까지 개정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향후 재건축 단지별로 여건을 고려해 기준일을 정할 방침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정비사업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시점을 앞당기로 한 것은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거래를 묶어 투기수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서울에서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안전진단 통과’ 전 아파트를 사야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재개발도 앞으로는 ‘정비구역 지정’ 전에 매수해야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 안전진단 이전 단계 재건축 단지들 호가 올려

“호가를 올리긴 했는데, 실제 거래는 안되고 있어요.”

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 단지, 서울 도봉구 창릉주공 단지 등을 돌아보니 기존 매물의 호가를 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관망세가 우세해 실제 매수세가 붙은 건 아니라는 게 지역 부동산 업계의 얘기다.

현지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지난 8일 예비안전진단(현지 조사)을 통과한 도봉구 창동 주공17단지 전용 36㎡의 경우 처음에 4억9000만원에 나왔던 매물의 호가가 최근 5억3000만원으로 올랐다. 동일 면적 또다른 매물은 5000만원 비싼 5억8000만원에 나와있다. 지난달 말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상계주공9단지 전용 79㎡는 지난 5월 실거래가(8억9000만원)보다 최대 1억원가량 오른 9억8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상계주공 재건축 단지 매물을 내놓은 ㅆ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호가가 오른 것은 맞지만, 거래는 안되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적극적으로 매수 의향을 보인 수요자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미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데 대한 부담도 있고 규제가 강화한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창동주공 재건축 단지 일대 ㅂ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국토부와 서울시 발표 이후 호가가 4000만~6000만원 정도 오르긴 했는데 사실 거래는 없다”면서 “워낙 매물 자체도 적다”고 말했다.

오는 9월 조합원 지위 양도 규제 강화를 법제화하기 전까지 예비안전진단이나 1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들로 매수세가 몰릴 수 있다는 관측 하에 일부 매도자들이 호가를 올리지만 아직 실거래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서울 도봉구 창동 지하철 차량기지 일대 전경. /조선일보DB

문제는 매물 자체가 적다보니 높은 값에 거래가 성사되기 시작하면, 다른 지역의 주택 가격 상승을 연쇄적으로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수년 동안의 부동산 시장 움직임을 보면 거래가 줄어든 상황이라도 가격이 오를 조짐이 보이면 비싼 값을 내고서라도 막차에 올라타려는 수요자가 몰리며 가격이 더 오르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 “매도도 못하고 세금만 내는 꼴” 거래절벽 불만

반면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에서는 ‘거래절벽’ 심화가 가시화했다. 일각에선 ‘옥상옥 규제'라는 불만 목소리도 있는 한편, 재건축 속도가 더 붙을 것이란 기대 목소리도 동시에 나왔다. 안전진단 결과 A∼C등급은 유지·보수(재건축 불가), D등급은 조건부 재건축(공공기관 검증 필요), E등급은 재건축을 할 수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지난 2010년 안전진단을 통과했으나 조합 설립 단계를 넘지는 못한 상황이다. 은마아파트 일대 ㄷ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사실상 거래 중지”라면서 “조합원 자격도 안 나오는데 누가 집을 사겠느냐”면서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올해 3월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안전진단 단계를 통과한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 ㅅ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어차피 매물도 없다”면서 “매물이 나온다고 해도 가격을 낮춰 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거래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집주인들이 새 규제에 동요하면서 크게 항의하는 분위기도 아니다”라면서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 마음이 급한 건 재건축 아파트를 사고 싶어도 못사는 사람들이고, 거래를 누른다고 해서 가격이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에 따른 실(失)보다 지역 개발 호재와 미래 자산 가치 상승 등 득(得)이 여전히 더 크다는 시각이 깔린 것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16개 아파트 단지(91개 동·8086가구) 중 14개 단지는 정밀 안전진단에서 D등급 이하를 받아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이들 단지 소유주 사이에서도 안전진단 최종 통과 전 9월 법이 통과되면, 이후에는 집을 팔고 싶어도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으로 매도, 증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만 섞인 우려 목소리도 나왔다. 올해 초 안전진단을 통과한 여의도 목화아파트를 소유한 김 모씨는 “이제는 집을 팔고 싶어도 마음대로 매도도 못하고, 세금 폭탄만 맞게 생긴 꼴 아니냐”고 했다.

지난 4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파크원 오피스동에서 바라본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 일대. /허지윤 기자.

그런가 하면, 동시에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시나 국토부도 공급 효과를 서둘러 내고 싶은 상황이라, 비록 규제가 더 생겼지만 인허가 등 추진단계를 넘는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현대6차에 거주하고 있는 조합원 J씨는 “투기과열지구에 토지거래허가제에 재건축 조합원 양도 제한까지 어차피 규제 폭탄이라 이주도, 거래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정비사업은 속도가 관건이고, 조합원들이 뜻을 모아서 사업 속도전을 해야 하는 때”라고 말했다.

◇ 새 방안 속 빈틈, 정비사업 불확실성·갈등 높일 수도

정부와 서울시는 이번에 발표한 정비사업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에 예외사유를 뒀다. ▲안전진단 통과(기준일) 이후 2년 이상 정비계획 입안이 없는 경우, ▲정비구역 지정일로부터 2년 이상 추진위 설립 신청이 없는 경우, ▲추진위 설립일부터 2년이상 조합설립 신청이 없는 경우 등 재건축 사업 추진이 장기간 지연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기준일 이후에 주택을 사도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토지거래허가구역(현재 서울 강남구 삼성동‧청담동‧대치동, 송파구 잠실동· 압구정 아파트 지구 24개 단지, 여의도 아파트 지구와 그 주변 16개 단지, 목동 택지개발 사업지구 14대 단지,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4개 구역 등)에서는 이런 예외도 적용되지 않는다. 안전진단 통과 이후 단계에 있는 단지라도 서울시가 시장 과열 우려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될 수 있다.

금융업계 한 부동산 전문가는 “사실상 아직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단계의 재개발, 재건축 추진 사업장의 조합원 지위 양도를 금지하는 한편, 기존정비구역 사업장에서도 시장이 과열 우려를 보이면 서울시가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를 할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이라면서 “두더지 잡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정비사업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라 오히려 시장 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매규제 기간이 장기화하면서 매물잠김 현상, 신축주택의 유통 매물감소로 매물 희소성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로 인해 대기수요가 많은 지역은 가격이 더 오르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재개발사업의 경우 종전과 달리 사업 초기부터 지위 양도가 차단되기 때문에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오히려 재개발 사업 추진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있다.

여경희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노후화한 빌라촌을 대상으로 한 재개발 시장 진입 수요는 실거주 목적도 일부 있으나 대체로 미래 수익을 기대한 투자 목적 수요”라면서 “이미 현금청산 가능성이 예고돼있고 여기에 사업 초기부터 지위 양도를 차단할 수 있는 조치가 나오면서, 사업성이 떨어지는 입지이거나 조합 간 이견이 큰 구역 내 빌라의 경우 가격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은 반시장적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시장 거래를 막으면서 가격 왜곡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고, 헌법에 명시된 거주 이전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상당하다”면서 “정부의 과도한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장 통제는 실패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