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리모델링 바람이 서울과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규제가 강한 재건축을 대신할 좋은 방안으로 떠오른 데다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며 사업성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기본 골격을 남기고 면적을 넓히거나 층수를 높이는 사업이다.

쌍용건설이 서울 마포구 현석동 일대에 지은 '밤섬 쌍용 예가 클래식' 아파트(오른쪽)의 모습. 1990년에 지은 호수아파트(왼쪽)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2개 층을 수직 증축해 지은 리모델링 아파트다. / 쌍용건설 제공

1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들이 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준공 21년이 넘은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선사현대아파트가 리모델링 추진을 위해 오는 26일 주택조합설립을 위한 창립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조합장 등 조합임원이 선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분양이나 착공 예정인 아파트도 있다. 지난 4월 착공한 서울 송파구 오금동 오금아남은 올 하반기에 리모델링해 짓는 327가구 중 조합원 몫을 제외한 29가구를 하반기에 분양한다는 계획이다. 이외 강동구 둔촌동 둔촌현대1차, 송파구 송파동 성지 등이 시공사 선정을 마치고 착공을 준비 중이다.

리모델링 바람은 지방으로도 옮겨갔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우방청솔맨션아파트는 지방 아파트 최초로 리모델링 조합을 설립했다. 지난달 11일 관할 구청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통보 받았고, 시공사 선정을 위한 공고문을 이달 중으로 띄울 계획이다.

김석종 대구 범어 우방청솔맨션 리모델링 조합장은 “우방청솔멘션은 준공 28년으로 재건축 기준인 30년에 미치지 못하지만, 노후 배관 등으로 주민들이 생활하며 겪는 불편이 상당했다”라며 “기존 노후화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자는 주민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서 현실성이 없는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지방 도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창원 성산구 상남동 성원토월그랜드타운은 지난 4월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를 꾸린 뒤 정비업체 선정을 마치고, 설계업체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2910가구로 구성된 대전 서구 둔산동 국화아파트도 지역 최초로 리모델링을 추진하며, 지난 4월 설계업체 선정을 완료했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에서 리모델링 조합 설립을 마친 아파트는 총 72개 단지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12월(54개 단지 4만551가구)과 비교하면 불과 반년 만에 리모델링 조합 설립을 마친 단지와 가구 수가 30% 이상 증가했다.

협회 관계자는 “최근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가 늘었다”라며 “5월 기준 통계에는 조합설립을 완료하고 시공사 선정 단계에 있는 단지만 포함했기 때문에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단계에 있는 단지까지 합하면 그 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첫 리모델링 단지인 '오금 아남아파트' 전경.

리모델링이 확산하는 주된 이유로는 높은 재건축 문턱이 꼽힌다. 재건축을 하려면 준공 후 30년이 지나고 안전진단에서 D등급 이하를 받아야 한다. 반면 리모델링은 준공 15년에 안전진단 B등급 이상이면 추진이 가능하다. 조합 설립을 위해 필요한 동의율도 66.7%로 75%인 재건축보다 낮다.

리모델링 붐과 함께 건설업계의 수주전도 치열해졌다. 1778가구 규모의 경기 군포 산본 개나리주공 13단지 수주전에는 현재까지 리모델링 준공실적 1위인 쌍용건설과 포스코 건설이 뛰어들었다. 지난해 11월 리모델링 전담 부서를 만든 현대건설은 물론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하나 둘 리모델링 사업 수주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경쟁 건설사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DL이앤씨와 현대엔지니어링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달 초 경기 수원시 ‘신성신안쌍용진흥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수주했다. 공사비 4600억원 규모 경기 광명시 철산한신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은 쌍용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했다.

리모델링 사업 수주 상위권인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리모델링이 대단지 위주로 추진되고 있어 1개 건설사 혼자서 이주비용 등 금용비용을 감당하기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며 “기술력 교환 등을 통해 건설사 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경쟁에 들이던 소모적인 비용을 줄이자는 분위기가 업계에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