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부동산 부분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며 그간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를 금지하자는 것과 실수요자를 보호하자는 것, 주택 공급확대를 통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책 기조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정책 기조를 대부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인식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정책이 여전히 불명확하고 모순적이라는 점을 해결하지 않고는 시장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은 1년간 앞뒤가 맞고 명확한 정책으로의 궤도 수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마치고 손을 든 기자 중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① “공시가격과 세금은 올리면서 분양가는 낮춰라”는 모순

1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시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 대비 19.9% 올랐다. 이는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에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집값이 오른 만큼 세금도 더 내라는 취지다.

실제로 재산세는 물론 종합부동산세까지 크게 오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같은 토지 가격을 근간으로 하는 분양가에는 또 반영을 못하게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월 서울시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2818만2000원이었다. 1년 전보다 5.15% 오르는 데 그쳤다. 청약에 당첨되면 로또를 맞았다는 ‘로또 분양’이라는 신조어가 생기는 이유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은 급등했는데, 정부가 분양가격을 통제하는 점이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고 지적했다. 분양가는 땅값에 건축비와 가산비 등을 반영해 계산한다. 땅값이 오르면 공시가격이 오르고 세금이 오르는 것처럼 분양 가격도 오르는 것이 흐름에 맞는다. 공시가격은 시세 상승 분 이상으로 올려잡으면서, 분양가격은 한참 아래로 통제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을 통해 이를 인위적으로 규제하면서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면 청약 당첨자에겐 이익이지만, 주택 공급자에겐 그렇지 않다 보니 공급이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면서 “건설사 입장에선 미분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분양 과열시장이 만들어지니 옥석을 가리지 않고 집을 짓게 되고 결국 집값 하락기엔 문제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위례신도시 신축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제공

② “민간주택공급은 늘리되 정비사업 이익 줄여라”는 모순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관련해 ‘민간 주택공급’의 역할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민간의 주택공급에 더해 공공주도 주택공급 대책을 계획대로 차질없이 추진해 가겠다”고 밝혔다. 건설·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그간 공공 주도 주택 공급만 강조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민간의 주택공급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민간 정비사업장을 주택 공급목표 달성의 파트너로 끌고 가기엔 여전히 규제가 많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가 대표적이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란 재건축으로 조합원이 얻은 이익이 인근 집값 상승분과 비용 등을 빼고 1인당 평균 3000만 원을 넘을 경우 초과 금액의 최고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에서 생겼지만 한동안 시행되지 않았다가 2018년 1월 1일 자로 부활하면서 수많은 재건축 아파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방배삼익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하 방배삼익 조합)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액은 조합원 1인당 2억8000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조합은 조합원 1인당 부담금 4억원 가량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물론 확정액은 아니다. 완공될 때 주택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부담을 느끼는 일부 조합원들은 재건축 추진에 반대하고 있다. 민간 정비사업장에서 주택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시장이 반응할만한 이익 구조를 만들어주면서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 학과 교수는 “민간 정비사업을 옥죄면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정부 전체적인 기조는 유지하겠다고 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민간 정비사업을 끌어 안는 정책은 나올 리 없다고 본다. 상징적인 발언에 불과하다”고 했다.

10일 서울시내 한 부동산에서 관계자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 연설 관련 방송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③ “실수요자도 입맛대로 투기꾼으로 판단”하는 모순

부동산 정책의 기조를 부동산 투기 금지와 실수요자를 보호로 못 박은 것에 대한 것에 대한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실수요자와 부동산 투기꾼을 명쾌하게 가를 수 없는데 또 편가르기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다주택자 중에도 부모 봉양이나 주말 부부 등의 문제로 2주택자가 된 사람이 있다. 정부가 일정 부분 세제 혜택을 주지만, 다주택자는 적폐라는 전제 자체는 바꾼 적이 없다. 1주택자를 봐도 종합부동산세 대상 기준인 공시가격 9억원 미만 아파트 소유자까지만 실수요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최근 집값이 급등하면서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아파트 1주택자가 크게 는 상황이지만, 종부세 기준은 변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또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임대사업을 하는 법인이나 사업자도 최근에는 모두 부동산 투기꾼 취급을 받고 있다. 등록임대사업자의 경우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고 세입자를 내보내지도 못한다. 선량한 임대주택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시세 차익이 커졌다는 이유로 장려하던 제도를 폐지 대상으로 한순간에 바꿨고, 소급 적용이라는 무리수까지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라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공사(SH) 등도 부동산 투기꾼이 된다. 앞뒤가 맞질 않는 정책을 펼치니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교언 교수는 “실수요자와 투기꾼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책 실패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데 그 전체 틀이 아직 바뀌지 않고 있다”면서 “투기꾼을 구분하겠다며 이상한 기준을 만들지 말고 정책을 추진해야 남은 1년간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