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과 3기신도시 발표 등의 영향으로 들썩였던 수도권 전세 시장에서 다소 혼란스런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전세금이 오르는 곳이 여전히 많지만, 과천과 분당, 하남 등 집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지역에서는 전세금이 오히려 내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급이 풍부한 곳은 어김없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분석한다.

1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1주차(3일 조사 기준) 경기도 내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32곳 가운데 전주 대비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한 지역은 ▲과천(-0.15%) ▲하남(-0.15%), ▲성남 수정(-0.08%), ▲성남 분당(-0.02%), ▲수원 장안(-0.09%), ▲광명 (-0.01%) 등 6곳으로 나타났다.

전세금이 내린 지역이 전주 4곳(과천, 수지, 수원 장안, 하남)보다 2곳(성남 분당, 광명)더 늘며 경기도의 주간 전셋값 상승률은 전주(0.12%)보다 0.01%포인트 낮은 0.11%로 집계됐다.

경기 과천 푸르지오 써밋 아파트 단지 전경. /대우건설

25개 지역은 여전히 상승세다. 특히 ▲시흥(0.54%), ▲오산(0.50%), ▲안산(0.27%), ▲평택(0.22%), ▲안성(0.18%), ▲양주(0.17%) 등의 상승 폭이 컸다. 작년 한해 전역이 과열 양상을 보였던 수도권 주택 시장에서 내리는 곳이 생긴 이유로 전문가들은 수요와 공급의 차이를 꼽았다.

최근 전셋값 오름폭이 큰 지역 중에서는 입주물량은 적은데, 타 지역에 비해 저가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수요가 늘어난 곳이 많다. 아파트 전셋값이 작년 8월부터 40주 연속 상승한 시흥이 대표적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7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1만가구 이상이었던 시흥의 입주 물량은 올해 2431가구로 줄었다. 오산은 올해 입주 물량이 아예 없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시흥의 경우 올해 입주물량이 감소한 데다 지역 내 신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매매가격이 오르면서 전셋값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산은 원래도 아파트가 많지는 않은 지역인데 올해 입주 물량이 없는데다 수도권 전역의 전셋값이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는 전세 수요가 유입된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기도 내 비규제지역인 동두천 아파트 전셋값도 전주 대비 0.36%나 올랐다. 작년에 비하면 올해 들어 상승 폭이 확대된 양상이다.

반대로 전셋값 상승세가 꺾인 지역도 있다. 경기권에서 가장 먼저 하락 전환한 지역은 과천이다. 시계열을 보면 과천 아파트 전셋값은 작년 12월 1주차부터 매주 떨어지고 있다. 작년 한해 과천 아파트 전셋값 누적 하락률은 7.86%였고, 올해 들어서는 5월 1주차까지 누적 2.05% 하락했다.

하남시와 성남 수정구도 지난 2월 2주차부터 하락 전환한 후 13주 연속 하락세다. 성남 분당구는 3월 4주차에 하락 전환했다. 이들 지역은 분양 및 입주 물량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가운데 전세 수요가 관망세를 보이면서 가격이 하락 전환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여경희 연구원은 “과천의 경우 입주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하락 전환했다”면서 “갈현·문원동 일대 과천지식정보타운의 분양이 거의 다 마무리된 데다 3기신도시 청약 대기수요자들 중에서 지역 전세에 들어갈 사람들이 대부분 진입을 마치면서 전세 수요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남도 학군수요의 전세시장 유입이 마무리된 데다, 앞서 급등한 전세가격에 대한 부담으로 수요자의 관망세가 이어지면서 가격이 꺾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파트 입주물량이 5월 2000여가구, 6월 2000여가구 등으로 계속 나오고 있어 전세시장 안정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올해 4월까지 아파트 전셋값이 상승세를 보였던 수원, 광명이 이달 들어 처음 마이너스(-0.01%)를 보였다. 다만 이를 전세 시장 전환 신호탄으로 볼 수 있을 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수도권 전세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부동산 상승장에서는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밀어올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때문에 최근 경기권 내에서 전세가격이 하락 전환한 지역들도 안정화 단계로 보기는 이르다는 경고음도 잇따른다.

최근 전셋값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과천, 하남 등은 경기권 내에서도 서울 접근성이 좋은 점 때문에 수요가 많았던 곳들이다. 이들 지역의 입주물량이 소진되는 시점에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들썩이면서 다시 불안해지거나, 관망하던 전세수요가 다시 시장으로 유입될 경우 전셋값이 다시 강보합으로 움직일 우려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여 연구원은 “올해 전세시장에도 주택임대차법이 유효하게 작용하는 데다 오는 6월 1일 과세 기준일을 기점으로 늘어난 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려는 사람들이 또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도 “세 부담이 커진 데 따른 영향으로 반전세 물량은 늘고 전세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고, 이와 동시에 하반기 이사 수요가 움직이면 상반기에 다소 진정된 임대차 시장 불안이 하반기에 다시 커질 우려도 잠재돼 있다”고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경기 성남 판교대장지구, 위례신도시 등이 입주를 시작하는 등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이 1분기보다 늘었으나 올해 전체 입주량이 많지는 않아 가격 하락보다는 상승률이 둔화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장기적으로는 경기권에 주택 공급이 확대될 요인이 많다는 점에서 시장 불안이 지속할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그런가하면, 수도권 내에서도 단지별로 가격 흐름이 엇갈려 움직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고준석 교수는 “광역교통망사업이 구체화되면서 경기도 지역 안에서도 아파트 단지별로 가격이 엇갈려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수도권 내에서는 교통 여건 개선 효과를 크게 보는 단지로 수요가 쏠리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