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파크원’. 빨간 크레용으로 테두리만 굵게 덧칠한 듯한 69층짜리 이 빌딩은 회백색의 서울 스카이라인 경관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준공 직후까지도 ‘빨간 기둥’을 둘러싼 대중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속에서도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랜드마크로 단숨에 자리매김했다. 파크원 건축물의 낮과 밤 풍경은 ‘출사족’들의 아름다운 피사체가 됐다. 평일인 이날도 건축물을 배경 삼아 혹은 아예 건물 내부 곳곳을 사진찍는 방문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파크원 단지의 낮과 밤 전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파크원 단지의 낮과 밤 전경.

서울 여의도에서 가장 높고 국내에서 세번째로 높은 건축물인 파크원은 대지 4만6465㎡에 지하 7층~지상 53·69층 오피스빌딩 2개동과 8층 규모의 쇼핑몰 1개동, 31층 규모의 호텔 1개동 등 총 4개동으로 구성된 여의도 유일의 대형 복합문화시설이다.

현재 준공 기준 국내 초고층건물 중에서는 서울 롯데월드타워(555m)가 가장 높고 이어 부산 엘시티(412m), 서울 파크원(318m), 인천 포스코타워(305m), 부산 두산 위브더제니스(300m) 순으로 높다. 파크원의 연면적은 62만 9047㎡로, 여의도 IFC의 약 1.3배, 63빌딩의 4배다.

파크원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영국 런던 그리니치 반도의 밀레니엄돔 등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의 RSHP와 시아플랜건축이 설계를, 포스코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새롭고 창의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도시의 미적 가치를 높이고, 미래 건축 기술을 주도하는 상징적 복합공간으로 만들자.”

설계자들은 이런 의도로 파크원을 구상했다고 한다. 파크원의 국내 설계를 맡은 시아플랜건축은 초고층 주상복합인 타워팰리스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부산 센텀스타타워 등 다수의 초고층·초대형 복합시설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 하이테크건축의 상징 붉은 기둥

파크원을 디자인한 리차드로저스는 최신 공학 기술 등을 바탕으로 건축의 기능, 재료, 구성, 시공법을 실험하는 ‘하이테크’ 건축의 대가다. 그는 초고층 파크원의 위엄을 높이고 한국전통 건축의 기둥 형상을 담아내기 위해 철 구조물인 모서리 기둥을 한국 전통 건축양식에서 위엄과 품위의 상징인 ‘자적색’으로 물들였다.

조원 시아플랜건축 대표는 “건축가의 시선에서 (붉은 기둥은) 매우 건축적이고 기술적인 솔루션으로 제안된 것”이라며 “전통적 색상을 담은 파크원의 붉은색 철골 트러스(대형 건물의 지붕 밑 공간에 설치되는 철골 뼈대) 외관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회백색의 주변 경관과 대비되는 독특한 매력으로 여의도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는 것은 물론, 서울의 도심을 관통하는 한강변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시각적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파크원 건물 외관의 붉은 기둥은 과감한 색을 썼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건축물의 공간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극대화한 상징이기도 하다.

파크원 설계의 특징 중 하나가 건물 외부 모서리에 8개의 대형 기둥(Mega Column)과 서로 연결해주는 대형 버팀대의 조립식 구조다. 건물 하중을 바깥쪽 큰 기둥이 버텨주기 때문에 안전한 데다 사무실 가운데에 기둥이 없어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은 프리미엄 철강재를 활용했다. 전체 철강재 6만 3000톤 중 약 70% 인 4만 3000톤을 고강도 특성을 가진 ‘TMCP(Thermo-Mechanical Control Process·열처리 제어 공정)’강을 썼다.

4월 26일 파크원 단지 밖에서 보는 건물 외벽. 현재 파크원 타워1에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건설, LG화학이 입주해 있다. /허지윤 기자

◇ 하나의 라인에서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동시에

건축에서 코어란 인적·물적 이동을 위한 수직 공간이다. 층수가 커질수록 코어가 갖는 의미는 크다. 파크원은 사각형 평면구조의 센터코어 방식으로 설계됐다. 이를 통해 파크원 실내 중앙의 큰 기둥들이 사라지고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조원 대표는 “파크원의 오피스동은 사각형 평면 구조로 입주사가 원하는 다양한 형태로 바꿔 가며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3m 높이의 통유리 커튼월과 바닥 매립형 공기순환기를 적용해 창측 시야를 더욱 넓혔다”면서 “한강과 여의도공원 조망이 가능한 탁 트인 시야와 풍부한 자연채광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크원 오피스 타워의 코어 계획은 저층부, 중층부, 고층부 구역으로 구분된다. 고층부 구역 엘리베이터의는 최고 분당 540m의 속도를 낸다. 중층부, 저층부의 엘리베이터는 1개의 승강로에 2대의 엘리베이터가 동시에 운행되는 트윈 시스템을 적용해 혼잡한 시간대에 수송능력을 극대화했다. 승객이 가고자 하는 층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자동으로 할당하는 목적층 선택제어 시스템(DSC)이 적용돼 있다.

파크원 오피스동 1층 로비. /허지윤 기자
파크원 오피스동 66층 오피스 내부. /허지윤 기자
오피스 전면의 큰 창을 통해 서울 도시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허지윤 기자

◇ 서로 다른 건물의 ‘연결성’ 핵심은 파빌리온

파크원은 비즈니스, 휴식, 쇼핑 등을 단지 내에서 모두 누릴 수 있는 게 목적인 시설이다. 그래서 구조적 ‘연결성’에 방점을 찍고 설계를 했다. 파크원 단지는 단일 오피스로는 국내 최고 높이이자 최대 규모인 오피스 타워와 바로 옆의 호텔 타워는 대지 전체를 아우르는 형상으로 배치됐다. 그 사이 서울 최대 규모의 상업시설을 넣었다.

오피스 타워와 상업시설이 잘 연계되도록 타워동 승강기 환승층인 지하1층과 리테일의 식품관을 실내에서 연결했다. 호텔은 1층에서 호텔의 북측과 남측으로 연결통로를 만들어 실내에서 두 건물의 동선이 연결되도록 했다.

또 지하철 이용고객, 파크원 오피스 사용자 및 인근 지역주민들의 보행 편의를 위해 지하철 여의도역에서 서울국제금융센터(SIFC)를 잇는 기존 지하 보도를 파크원까지 연장했다.

파크원 오피스타워를 연결하는 파빌리온 로비. /시아플랜건축

파크원 단지 내에서 연결성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 파빌리온이다. 오피스 타워의 진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공간을 거쳐야 한다. 조원 대표는 “이는 두 타워를 잇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하는 파크원 타워의 고유한 디자인 공간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주차장을 연결하는 주차장 승강기도 파빌리온의 외부 영역에 있어서 오피스 타워 이용자들도 다른 보행자처럼 외부에서 들어올 때 파빌리온부터 순서대로 지나쳐야 한다.

◇ 지붕에 있는 여덟개의 크레인, “텐트 원리로 기둥 없앴다”

오피스동 로비가 마치 갤러리에 온 듯하다면, 리테일동(쇼핑몰) 내부는 대형 실내 정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리테일동 건물 밖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외벽 붉은색 크레인이다. ‘아직도 공사중이냐’는 오해를 부르기도 했는데, 여기에 쇼핑몰 내 탁트인 개방감이 느껴지게 한 열쇠가 들어있다.

파크원 리테일동 ‘더현대서울’ 건물은 8마리의 학(크레인 구조물)이 지붕(방패연)을 지지하고 있는 형상이다.설계자들은 이곳의 천장부에 연(Kite) 구조시스템을 도입해 가로 130m, 세로 60m의 기둥이 없는 무주공간(無柱空間)을 만들어 지상5층 국내 최대 실내정원과 더불어 새로운 개념의 문화, 체험, 휴식공간을 탄생시켰다.

조원 시아플랜건축 대표는 “백화점 건물 상층부의 크레인 구조는 기둥을 없애고 넓은 공간을 활용해 건축물의 실용성을 높인 하이테크 구조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라면서 “한국 전통 방패연을 형상화한 백화점 천장부 거대한 창을 통해 건물 전체에 자연채광이 들어오게 했다”고 설명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파크원 리테일동 천장부.

붉은 크레인이 천장부를 떠받치면서 중앙 기둥 없이 건물 하중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는 어떻게 가능할까.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비유하자면 텐트를 치는 원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면서 “텐트를 칠 때 내부 중앙 기둥을 세워 텐트를 받치는 게 아니라 각 모서리의 끈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치듯, 이크레인이 건물 내 지붕을 들어 올려주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위성항법장치(GPS)와 3D 스캐너를 이용해 국내 최초로 건물 가장자리에 8개의 대형 기둥을 세우고, 기둥 사이를 사선 형태의 대형 버팀대로 연결해 중심을 받치는 ‘메가 프레임’ 구조를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국내 초고층 빌딩들은 건물 중심축인 코어(Core)와 대형 기둥을 연결하거나 철골기둥끼리 단단하게 연결시키는 ‘아웃리거·벨트트러스 방식’으로 지은 것과 다른 방식이다.

이런 설계와 시공력을 적용해 쇼핑몰 내는 중앙 대형기둥이 없는 개방된 공간을 만들 수 있고, 구조물을 노출시키는 구조표현주의(structural expressionism)로 건축물의 차별성도 높일 수 있었던 셈이다.

파크원 리테일동 건물 외벽 붉은 색 크레인. /시아플랜건축

더현대서울의 전체 영업 면적(8만9100㎡) 중 매장이 차지하는 판매 영업 면적(4만5527㎡)은 51%이고, 나머지 49%는 실내 조경과 고객 휴식 공간으로 구성돼있다. 5층에 면적 3300㎡의 실내 녹색공원(사운즈 포레스트)과 에스컬레이터 옆 12m 높이 뽕나무 아래로 흐르는 인공 폭포는 이미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 됐다.

4월 26일 더현대서울 안. 백화점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 황남경 인턴기자
4월 26일 더현대서울 안. 백화점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 황남경 인턴기자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내부.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내부.

파크원 단지에는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이 들어서 있다. 객실 326실과 레스토랑 3개, 루프톱 바, 실내 수영장, 스파, 피트니스, 대연회장, 회의실 등을 갖췄다. 아코르그룹은 여의도가 금융중심지라는 입지를 살려 사업가 고객과 행사를 유치하고, 직장인과 연인, 예술가 등도 주요 고객으로 적극 공략할 수 있다고 봤다.

샤론 코헨(Cohen) 페어몬트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은 “새로운 지점을 열 때는 우선 해당 도시가 국내외에 인지도가 높고 사업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지, 두번째로 우리 호텔이 지역 사회의 중심에 자리해 주요 행사를 유치할 수 있는지를 분석한다”면서 “한국은 페어몬트 브랜드에게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중요한 시장이고, 서울 여의도는 두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한다”고 했다.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호텔 내부. /시아플랜건축

◇ 땅 산지 40년만에 빛 본 비하인드 스토리

파크원 개발부터 준공까지의 여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파크원 부지는 통일교재단이 1980년대에 세계선교본부를 짓기 위해 사들인 땅으로, 통일주차장 부지로 사용돼왔다. 그러다 고(故)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셋째 아들인 문현진 씨가 말레이시아 법인 APD 등을 통해 100% 출자해 시행사 Y22를 만들면서, 파크원 개발 프로젝트에 시동이 걸렸고 2007년 착공에 들어갔다.

하지만 2010년 11월 토지 소유주인 통일교재단과 시행사인 Y22 간 지상권 설정 관련 소송 문제를 시작으로 공사는 멈춰섰다. 이후에도 Y22 측이 오피스 2개 동을 국내외 기관투자가에 선매각하려 재단 측에서 문제를 삼는 등 파열음이 잇따랐다. 결국 2014년 Y22가 최종 승소하면서 2016년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 소송과정에서 최초 시공사였던 삼성물산의 공사 계약이 해지되면서 포스코건설이 새 시공사로 선정돼 건립 공사를 이어갔다.

현재 파크원 4개동 가운데 지상 53층짜리 오피스 1개동(타워2)은 NH투자증권이 주인이다. 작년 NH투자증권이 매입해, 이곳으로 본사 사옥을 이전했다. 매입가는 약 1조원으로 작년 기준 최대 규모 거래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