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지난 7~8일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3~6%포인트 격차를 보였던 것과 달리 개표 상황 내내 접전을 유지하며 1%포인트 내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기를 거머쥐었다.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윤 당선인의 득표율은 48.56%다. 이 후보는 이보다 0.73%포인트 적은 47.83%를 기록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득표율(2.37%)과 합하면 범여권 후보가 과반을 차지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이겨도 진 선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전투표 돌입 전까지만 해도 5~10%포인트 차 큰 폭으로 앞서던 윤 당선인이 일주일의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 동안 이 후보의 ‘막판 추격’을 허용한 데엔 ‘반(反) 여성’ 행보가 이유로 지목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윤 당선인은 지난 2일 마지막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하나”라고 발언해 비판이 일었다. 앞서 “페미니즘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단 얘기도 있다”고 말해, 이를 상기시키자 이같이 설명한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에 “윤 후보가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일부라고 하니 놀랍다”고 했다.

이어 지난 8일에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한 발언의 진위 여부에 대해 “행정적 실수”라고 해명했다. 본투표 전 날이자 세계 여성의 날에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공언한 셈이다. 윤 당선인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다시 언급하면서 강조하기도 했다.

이같은 ‘반 여성’ 행보는 결국 윤 당선인에게 자충수가 돼 역풍이 분 것으로 해석된다. 전날 공개된 지상파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여성에서 이 후보는 58.0%, 윤 당선인은 33.8%를 각각 득표한 것으로 예측됐다. 각각 36.3%, 58.7%를 기록한 20대 남성과 사뭇 다른 결과다. 30대 남성은 이 후보가 42.6%, 윤 당선인이 52.8%를, 30대 여성은 이 후보가 49.7%, 윤 당선인이 43.8%를 득표하는 걸로 예측됐다. 이번 조사는 95% 신뢰 수준에 허용 오차는 ±0.8%포인트다. 자세한 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전날 SBS 개표방송에서 이 후보와 윤 당선인이 ‘초박빙’ 대결을 펼치는 것에 대해 “20대 여성들이 대거 빠져나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여성의 날’에 여가부 폐지와 성평등 예산을 빼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사자고 하는 것은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라며 “20대 남성도 안티 페미니즘을 외친 사람은 소수인데 오판을 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 “여가부 폐지 등을 계속 언급한 것은 윤 후보가 자기 낙선 운동을 해온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전원책 변호사는 같은 날 KBS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대남-이대녀 젠더 문제를 이슈로 선거운동을 한 건 국민의힘”이라며 “저는 이 선거운동이 실패했다고 본다. 처음부터 걱정이 컸다”고 했다. 이어 “2030에게 내세울 공약이 많았다. 국가 재정 문제 같은 것”이라며 “왜 젠더 문제를 끌고 갈까, 그런 불만이 있었다”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 지은 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개표 상황실을 찾아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성별 갈라치기’와 세대포위론에 집중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선거 전략이 유효하지 않은 걸 넘어서서 오히려 악수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SNS)에서 “이준석 대표 때문에 10%포인트 차이로 이길 걸, 1%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호남 두 자리수는 돌파했으나 실망감은 커졌다. 이대녀들은 이대남만큼 결집 못한다는 발언은 ‘정동영급 망언’이었다”, “지역 갈라치기로 표 받아먹고 이념 갈라치기로 표 빨아먹더니 이제 더 갈라칠 게 없어 세대포위론으로 세대 갈라치기를 하고 이대남 이대녀로 또 성별 갈라치기를 한다. 다 이준석 작품이다”라고 했다.

정태근 전 국민의힘 선대위 정세분석실장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나와 “20대 남성들의 지지를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 여가부 폐지 같은 여성들에게 반감을 산 정책을 내세운 것이 넉넉하게 이길 선거를 어렵게 만들었다”면서 “20대 30대 여성들의 정권교체 욕구를 간과한 것이 독이 될 뻔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