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7일 주식 양도세 폐지를 공약하면서 10억원 이상 대주주가 보유한 주식도 과세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폭락 장에 신음하는 개미투자자들의 표심을 겨냥한 공약인 것으로 풀이된다.

윤 후보 측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주식시장이 안정화된 후 선진국형 과세 체계를 설계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현 정부가 마련한 금융투자소득 과세 방안을 만드는 데 2~3년 가량이 소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주식 소득 과세를 무효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윤 후보측이 10억원 이상 대주주에 대해서 시행 중인 주식차익 과세도 폐지할 방침을 밝히면서, ‘주식 부자 감세’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식을 팔고 얻은 이익에도 세금을 걷지 않는 게 공정이냐”라는 문제제기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회 입법이 필요해 ‘여대야소’ 국면에서 실제 입법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윤 후보가 강조하는 공정과 상식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정치 분야 공약을 발표한 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 코스피 2700선 붕괴 속 개인투자자 표심 겨냥했지만

28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윤 후보는 전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식 양도세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남겼다. 이는 미국의 조기 긴축 등의 여파로 최근 코스피 2700선이 붕괴되는 등 주가 폭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데 따른 공약 행보인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 측에 따르면 주식시장이 안정화될까지 보유 금액에 상관없이 주식에 대한 과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정책을 주도한 원희룡 국민의힘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은 이날 오전 선대본부·원내지도부 연석회의에서 “개인투자자에 대한 주식 양도소득세 적용 기준을 확대하겠다는 현 정부 방침을 뒤집겠다는 것이 윤 후보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오는 2023년부터 금융투자소득 과세를 전면 시행할 계획이었다. 대주주뿐만 아니라 개인투자자도 연간 5000만원 이상 양도차익을 거두면 과세표준 3억원 이하는 20%, 3억원 초과는 25%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앞서 윤 후보는 증권거래세 완전 폐지·공매도 개선 등을 골자로 한 ‘개인 투자자 보호’ 공약을 발표하면서도 보유 기간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주식 양도소득세율의 경우 장기 투자자에 대해서는 우대 세율을 적용해 낮추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는데 이날 공약에서는 금액에 관계없이 양도소득세 완전 폐지로 더 나아간 것이다.

원 본부장은 “윤 후보는 한국의 주식시장을 육성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마지막 자산 형성의 꿈을 주식시장에 두고 있는 한국의 세대와 연령을 초월한 개미 투자자들의 보호를 위해 양도 소득세를 전면 폐지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러스트=손민균

與 “재벌총수 등 부자들을 위한 부자 감세” 비판

문제는 이날 윤 후보 측에서 ‘10억원 이상 대주주 보유 주식에 대한 양도세 폐지’까지 거론했다는 사실이다. 원 본부장은 “현재 주식 양도세는 한 종목의 주식에 대해서 양도차익이 생겼을 때 세금을 물리고 있다”며 “현재는 대주주 지분 1% 또는 보유액 10억원 이상인 경우에 매기고 있는데, 원래는 3억원 이하까지 모든 보유 주식에 대해서 양도 세금을 매기려고 하다가 ‘동학개미들’의 저항 때문에 2023년으로 미뤄져 있는 상태”라며 “이를 모두 폐지한다는 게 윤 후보의 구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도세를 물림으로써 투자자들이 외국시장으로 빠져나갈 때 오히려 그 피해는 한국 증시 주가의 추락을 가속화하고 개미 투자자들이 모든 막판 덤터기를 쓰게 된다”라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미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주주 지분율, 보유 금액 관계없이 양도세를 전면 폐지 한다는 게 윤 후보의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책의 기본 철학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맹점이 있다. 당장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공정시장위원장인 채이배 전 의원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윤 후보의 ‘세퓰리즘’은 불공정과 몰상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젯밤에는 나랏빚을 걱정하다가 오늘 아침에는 세금 폐지를 얘기하는 윤석열 후보는 국가 운영 원칙이 불공정과 몰상식인가”라며 “이 정책은 재벌총수 등 부자들을 위한 완전 부자 감세”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재벌로 분류되는 대기업 일가의 3, 4세 승계 작업이 이뤄지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비상장주식을 상장시킨 뒤 매각해 얻은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가 불가능해진다는 부작용도 제기한다. 비상장 회사를 통한 세금 없는 재산 승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도 비판적인 시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주식의 양도세를 줄여나가거나 일정 부분에 수익을 못 내는 분들에 대한 세금 부담을 완화시켜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라며 “다만 상당히 많은 소득이 발생한 경우까지 아예 세금을 안 내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주주를 위한 주식양도소득세 폐지가 슦열이형(윤 후보)의 공정과 상식인가”라고 지적했다.

야당 내부에서도 경제 관료 등 전문성을 가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날 발표한 내용에 대해 비판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연간 5000만원 이상 양도차익에 과세되는 현행 금융소득투자 과세는 사실상 대다수의 ‘개미’들과는 관계없는 공약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윤 후보가 ‘증권거래세 폐지’ 공약을 철회하겠다고 한 것이 개미 투자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 본부장은 “금번 증시 체력 강화를 위한 주식양도세 폐지와 관련, 거래세는 현행 세율을 유지한다”면서 “이미 증권거래세를 0.25%에서 0.23%로 내린 것에 대해서도 다시 올리냐는 질문도 주셨는데, 다시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부자 감세 논란에 尹측, 명쾌한 해답은 없어

그러나 윤 후보측은 주식 부자 감세 논란, 대주주의 승계용 주식 매각 차익에 대한 먹튀 논란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주식 양도세 폐지 공약을 직접 입안한 것으로 알려진 원 본부장은 “주식 보유가 많은 사람,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을 수백억 원씩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세금을 안 매기느냐고 (지적)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배당 소득이라든가 금융 투자 소득 과세를 통해 종합적으로 과세가 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원 본부장은 기자들이 관련 질문을 쏟아내자, “대주주들의 어떤 경영권을 위한 지분 거래라든가 아니면 이걸 자회사로 뺐다가 이걸 가지고 자금을 만들어서 뭔가 투자를 하기 위해서 가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꼭 양도 소득세가 아니더라도 그런 부분들을 규율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에 대해서는 배제하는 것으로 잡았다”고만 답했다.

윤 후보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주주 양도세 (폐지) 문제는 ‘먹튀’가 있다면 그것을 보완하는 제도를 만들면 되는 것이지, 세제를 갖고 저지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답변은 현재의 증여세나 상속세 등으로는 비상장 회사 주식 증여와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 회사 상장 후 매각으로 인한 차익 실현 등으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이뤄지는 재벌 오너들의 재산 대물림을 차단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민간 경제연구원의 고위 관계자는 “윤 후보의 공약은 주식 거래를 통한 부자들의 부의 대물림에 아무 통제 장치를 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많다”면서 “대주주 주식 차익 과세는 승계 자금 확보 목적으로 인한 대주주의 대규모 주식 매도로 인해 개미 투자자들의 주식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는데, (윤 후보 공약대로라면) 이런 기능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원희룡 정책본부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선대본-원내지도부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측 ”합리적인 과세 시스템 만들어야” 강조했지만...구체적인 정책은 “차후에”

선대위 경제정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발표는) 원 본부장이 말한 ‘합리적인 과세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한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원 본부장은 “이후 양도 소득세가 아니라 금융 투자 소득에 대한 세금, 그리고 차익 생길 때 세금을 매기고 손실은 나 몰라라 하는 일방통행식 세금이 아니라 손익 통산을 기준으로 해 종합해서 세금을 매기는 선진국형 과세 체계를 설계하고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본부장은 이어 “그리고 이는 주식시장이 안정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상당히 극복한 이후에 도입하게 될 것”이라며 “그전까지는 대주주 지분 보유 금액 관계없이 개별 주식 양도차에 대해서 세금 매기는 것을 전면 폐지한다는 약속을 드린다. 좀 더 자세한 문의 사항은 차후에 다시 말씀드리겠다”고도 했다.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일단 뒤로 미룬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대야소 국회에서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될지는 의문이 든다는 분위기도 있다. 허무한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윤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의 주식 관련 문제를 연상하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현안대응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3일 김건희씨가 보유하고 있던 22억원 상당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주가 조작이 집중된 시기에 전량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TF는 이날 오전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2014년 도이치모터스 감사보고서상 주요 주주명부에 따르면 2012년 12월 31일 기준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기재돼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TF는 “(김씨가) 2010년 총 22억원(매입가 기준 합산)에 달하던 도이치모터스 보유 주식을 주가조작이 집중된 시기였던 2010∼2012년 사이 모두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는 검찰이 특정한 도이치모터스 주가 부양, 주가 방어 등 주가조작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시기와 일치한다고 TF는 설명했다. 야당에서는 즉각 무리한 주장이라고 맞섰지만, 윤 후보의 주식 양도세 폐지 주장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