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동학’에 대한 발언이 잦다. ‘동학’과 ‘외세’의 대결을 중심으로 한 이 후보의 역사관에 관심이 쏠린다.

이 후보는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업비트라운지에서 열린 가상자산 거래소 현장 간담회에서 가상자산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 동학군의 우금치 전투를 들고 나왔다. 신기술 수용이 늦어져 생긴 역사적 비극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풀이가 나왔다. 이어 이 후보는 “가상자산은 이미 전 세계에 실재한다. 외면한다고 없어지지 않고 기회만 잃게 된다”면서 “자칫 잘못하면 구한말 서구문물을 거부하던, 쇄국정책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 후보의 발언 의도가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금치 전투’는 딱 맞는 예시는 아니다. 이 후보가 서구문물 및 기술격차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한 동학군을 겨눈 개틀링 기관총은 관군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였기 때문이다.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군이 전멸해 조선이 일본에 복속됐다는 주장도 지나친 비약이다. 동학군의 2차 봉기가 외세를 반대하는 성격이 있었지만, 동학군이 당시 조선을 대표하던 정치 세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우금치 전투가 벌어진 1894년과 대한제국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1910년 사이에는 16년이란 간극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난달 5일 전북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 동학농민운동 전적지 방문, 동학농민 위패를 모신 구민사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는 지난달 5일 전북 정읍 샘고을시장 즉석연설에서는 “안타깝게도 우금치고개에서 3만 명에 가까운 (동학)혁명군들이 단 2700명의 일본군에게 전멸당했다”고 했다. 역시 사실과 다르다. 당시 동학 진압군 지휘부 양호도순무영의 기록인 갑오군정실기(甲午軍政實記) 등에 따르면 2000~3000명 규모의 진압군 중 주력은 조정이 파견한 관군이었고, 일본군은 후비대 200여명이었다.

관군 지휘관이 우금치전투에서 일본군 장교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등의 모습 등 조선군과 일본군의 갈등 상황도 있었다. 이는 조선 내정을 간섭하던 일본 공사와 일본군 장교들이 진압군 지휘부인 도순무영 지휘부를 꺼리고, 동학군 진압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도순무영을 폐지하게 한 배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다만 드라마 ‘녹두꽃’ 등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우금치 전투를 일본군이 직접 진압하는 식의 묘사가 잦다.

이 후보는 정읍 샘고을시장 연설 후에는 정읍 덕천면에 위치한 황토현전적도 방문했다. 동학군이 1894년 5월 관군에 승리하며 기세를 높인 곳이다. 사태 확산에 놀란 조정은 이후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일본도 이를 계기로 조선에 개입하게 됐다.

이 후보가 동학을 정치적 메시지의 소재로 끌어온 사례는 지난 대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2017년 2월 출간한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 논란 속에 나는 또 하나의 역사적 경고음으로 동학혁명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면서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은 거세게 일기 시작한 동학혁명의 불길을 끄기 위해 일본군을 끌어들였다”고 썼다. 이어 “그렇게 조선 땅으로 입성한 일본군은 계속해서 주둔하며 국정을 간섭하기 시작했고, 기어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뒤 을사늑약과 식민지배로 이어지는 야욕의 프로세스를 진행해 나갔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이같은 ‘동학’ 호출을 선동의 기술로 보고 있다. 다음 대통령 임기중인 2024년에 130주년을 맞는 만큼, 동학 혁명은 당사자가 있는 현실의 정치적 과제는 아니다. 대신 대중문화 등에 기반해 반일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야권을 ‘토착왜구’로 공격하며 ‘선거는 한일전’이라는 구도를 즐기는 범여권에서는 놓칠 수 없는 소재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선동술이 아니라 이 후보 스스로 근대사를 동학 대 외세 대결 구도로 믿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역사 인식에 대한 우려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해 11월 12일 ‘가쓰라-태프트 밀약’ 발언으로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이 후보는 방한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만나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야당에서는 “복잡한 국제정치적 원인이 작용해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터무니없이 단순화시킨 반(反)지성적 편견”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소개한 ‘이재명은 합니다’(2017)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엿보인다. 이 후보는 “최근 열강들의 외교 전략은 100년 전 구한말 시대의 각축전과 다를 바 없다”고 쓴 뒤, “일본과 미국이 다시금 밀월 관계를 형성하면서 불길한 데자뷔가 펼쳐지고 있다”면서 “자국의 이익이 보장된다면 미국이 언제 또 다시 일본에게 제2의 태프트를 보내 대한민국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밀약을 맺을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의 대일 외교정책도 이같은 역사인식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그는 지난해 11월 12일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관련 “지금의 일본은 과거 오부치 선언이 나올 때(1998년)의 일본이 아니다. 한참 우경화되었다”고 발언해 논란을 샀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대통령이 된다면 한일관계 개선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겠다’ 발언에 대한 반응이었다.

1998년에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일본은 반성·사죄를, 한국은 미래지향적 노력을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후보의 발언은 이 선언이 현 시점에서 유효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됐다. 당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와 관련 “이재명은 반일감정 자극해 표 얻을 생각을 한다. 김어준 말대로 대선을 한일전으로 치르겠다는 것”이라며 “대립적 민족주의로 국민을 친일-반일로 갈라쳐 그 절반을 토착왜구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 믿는 모양”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