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일본과 위안부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당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였던 윤미향 의원에게 여러 차례 알렸던 사실을 기록한 문건이 26일 공개됐다. 외교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발표 전에 윤 의원에게 수 차례 설명했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공동발의자인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25일 오전 차별금지법 제정 공청회가 열린 국회 법사위 회의실 앞에서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외교부의 ‘동북아국장-정대협 대표 면담 결과(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4건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당시 ‘이모 외교부 동북아국장이 2015년 3월 9일 정의연 측 요청으로 윤 의원을 만나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협의 동향과 위안부 피해자 중 이미 사망한 사람에 대한 보상 문제, 피해자 의견 수렴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적고 있다. 다른 문건들은 같은 해 3월 25일과 10월 27일, 12월 27일에도 외교부 동북아국장이 윤 의원을 만나 협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화 내용은 검은색 줄로 가려져 있다. 그러나 대화를 요약한 항목들의 제목은 일부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동북아국장은 ‘현재 위안부 협상 진행 상황’과 ‘최근 일 측 분위기’ 등을 언급했고, 윤 의원은 ‘정대협이 수용 가능한 위안부 문제 해결 수준’과 ‘정대협 추진 예정 사업’ 등을 언급했다.

이 중 위안부 합의 당일인 2015년 12월 28일 작성된 문건은 외교부 국장이 윤 의원에게 일본 정부와의 합의 내용을 알리고 피해자 지원단체들과 합의 내용을 공유하는 방안을 논의한 기록을 담았다. 이 문건에 따르면 동북아국장은 합의 전날인 2015년 12월 27일 서울 시내 식당에서 윤 의원을 만났다.

26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공개한 2015년 위안부 합의 관련 외교부와 윤미향 의원(당시 정대협 대표)의 면담 내용. /연합뉴스

이 문건에는 “이 국장이 발표 시까지 각별한 대외보안을 전제로 금번 합의 내용에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아베 총리 직접 사죄·반성 표명, 10억엔 수준의 일본 정부 예산 출연(재단 설립) 등 내용이 포함된다고 밝힌 데 대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이 국장이 지방 소재 피해자 지원단체(나눔의 집, 마·창·진 시민모임, 통영·거제 시민모임, 대구 시민모임) 측과 사전에 어느 수준까지 합의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좋을지 문의한 데 대해”라는 내용도 담겼다. 이 국장은 ‘합의 문안 공유는 어렵다’는 뜻을 윤 의원에게 밝히고 설득을 위해 ‘일 측 대외 설명요지’를 구두로 설명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국장 설명에 윤 의원이 당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가림 처리돼 공개되지 않았다.

한변은 기자회견에서 “윤미향씨는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이나 피해자 지원 단체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일본과 합의했다며 비난했다”며 “왜 그런 허위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합의 내용을 진솔하게 피해 할머니들께 얘기하고 공유했다면 피해자들이 그렇게 반발했을지, 박근혜 정부가 합의를 잘못했다고 그렇게 매도됐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외교장관 합의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외무상(왼쪽). /연합뉴스

다만 공개된 문건만 놓고는 위안부 합의 전날 외교부가 ▲일본정부 책임 통감 ▲아베 총리 직접 사죄·반성 표명 ▲10억엔 수준의 일본 정부 예산 출연 등 일본이 취할 조치 이외에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 등 한국이 약속할 사항까지 윤 의원 측에 설명했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다. 당시 합의에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는 내용과, 한국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가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고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자제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앞서 한변은 외교부에 위안부 합의 당시 윤 의원과 면담한 기록을 공개하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가 비공개 처분을 받자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1심에 이어 최근 항소심에서도 일부 승소했다. 외교부는 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구체적 협의 내용을 제외한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외교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안의 사실관계와 관련한 소모적 논쟁이 오랜 기간 지속돼 온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번 정보 공개를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혀 그간의 논쟁이 종식되고, 국민의 알 권리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또 “앞으로도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라는 입장 하,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지속 경주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