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클래식을 좋아한다며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를 즐겨 듣는다고 말했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면 생소한 작곡가의 생소한 곡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12일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를 아주 사랑한다”며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언급했다.

그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나치에 포위됐을 때 그걸 견뎌내면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러시아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전 세계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러시아 국민들께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지난 10일 취임식에서 그가 강조한 키워드인 ‘세계시민’, ‘자유’ 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처럼 클래식 애호가인 그의 취임식에서도 유명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각각의 선곡 의미를 풀어봤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입장하고 있다. /뉴스1

◇‘위풍당당하게’ 새로운 새벽 열겠다

14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우선 그가 아내 김건희 여사와 등장할 때 울려 퍼진 위풍당당 행진곡은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대표작이다. 이 곡은 일반인에게도 유명한 선율로 힘찬 분위기가 특징인 음악이다. 제목인 위풍당당(Pomp and Circumstance)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의 제3막 제3장의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pomp의 화려함이라는 뜻과 circumstance의 의식 이라는뜻이 합쳐져 화려한 의식, 위풍당당이 됐다. 제목 그대로 새 시대를 힘차게 열겠다는 선곡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위풍당당 행진곡 1번이 발표된 1901년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죽고 에드워드 7세가 즉위하던 때였다. 에드워드 7세는 1번을 듣고 해당 곡에 가사를 붙여 자신의 대관식에 써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엘가는 1번의 트리오 부분을 주제로 앞뒤에 선율을 붙여 새로운 곡을 만들었고, 이 곡에 벤슨의 시를 붙였다. 이후 이 곡에 별도로 ‘Land of Hope and Glory(희망과 영광의 땅)’라는 이름을 붙여 1902년 6월에 발표했다.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조선DB

흥미로운 사실은 이 곡의 가사에도 자유가 첫 순에 나온다는 점이다. 취임식에서 ‘자유’를 35번이나 말한 윤 대통령의 의중과 어울리는 음악이었던 셈이다.

이 곡의 가사는 이렇다. ‘Land of Hope and Glory, Mother of the Free, 희망과 영광의 땅, 자유의 어머니이시여 How shall we extol thee, who are born of thee? 당신의 소생인 우리, 당신의 이름 어찌 높이리오? Wider still and wider shall thy bounds be set; 넓게 더 넓게 당신의 강역이 세워지리니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당신에게 힘을 주신 하느님, 당신을 더욱 강대하게 하시리라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당신에게 힘을 주신 하느님, 당신을 더욱 강대하게 하시리라.’

가수 김호중씨가 네순도르마를 부르는 장면. /팬카페 캡처

아울러 취임식 끝부분에 성악가들과 합창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울려펴진 ‘네순도르마(Nessun Dorma)’는 이탈리아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가 남긴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곡이다. 네순도르마는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의미다. 이 곡의 주요 가사는 ‘잠들지 마라. 어두움이 지나가고 새벽이 오면 승리하리라’다.

문재인 정권과 부딪혀 검찰총장직을 내던지고 대통령까지 된 본인을 은유하는 듯하는 내용이다. 탄핵 정국 이후 잠들었던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해외 취임식 클래식은 오바마 美 대통령이 회자

한편, 미국의 클래식을 활용해 모범이 된 무대는 지난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이었다. 출연자는 이츠하크 펄먼(바이올린), 요요마(첼로), 가브리엘라 몬테로(피아노), 앤서니 맥길(클라리넷)이었다. 최근 유서 깊은 베를린필, 빈필과 자주 연주하며 사실상 클래식 작곡가 반열에 오른 영화 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가 취임식을 위해 작곡한 ‘노래와 일상의 선물(Air and Simple Gifts)’을 4분 동안 연주했다. 연주를 하는 중간에 정오가 됐고, 아직 선서를 하지 않은 오바마는 이 음악이 흐르는 도중에 법적으로 대통령이 됐다.

이 연주가 의미있었던 이유는 또 있다. 연주자들은 아시아계(요요마), 유대계(펄먼), 라틴계(몬테로), 아프리카계(맥길)로 인종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음악은 철저히 미국적이었다. 작곡가 애런 코플랜드의 팬인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식 사상 처음으로 클래식 4중주단을 초청하면서 그의 작품을 부탁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도 다문화 합창단인 레인보우합창단이 무대에 섰다. 유명한 가수보다 더욱더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단상에 올라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