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이자 최대 교역국이다.”(청와대 고위관계자)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외교적 보이콧을 하면) 선수들은 참 외로울 것 같다.”(최종건 외교부 1차관)

미국 정부가 내년 2월 개최되는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선수단만 파견하고 정부를 대표하는 공식 사절단은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자 한국 정부와 청와대에서 나온 반응이다. 또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2일 ‘반중(反中)’ 노선을 분명히 한 호주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중국과 연계한 해석을 경계했다.

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중국·러시아 견제 성격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도 중국을 연상시킬 수 있는 발언을 삼갔다.

10일(현지 시각) '국제 인권의 날'에 인권단체들이 대만 타이베이 중국은행 건물 앞에서 베이징동계올림픽 보이콧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최종건 “文대통령 호주 방문, 중국 견제 의도 전혀 없다”

최근 미국 정부는 중국의 인권 유린을 이유로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선언했다. 10일까지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한 나라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총 5개국이다. 미국과 함께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속한 국가들이다.

다만 서방 선진국 중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중 성격의 안보협의체 쿼드(Quad) 회원국인 일본은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정부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동참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 한 이유는 남북관계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 7일 외교적 보이콧 질문에 “정부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이 2018년에 평창, 2021년에 도쿄에 이어지는 릴레이 올림픽으로 동북아와 세계 평화, 번영 및 남북관계에 기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기본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주주의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 회의 시작전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더 분명하게 말했다. ‘미국이 베이징동계올림픽 보이콧을 결정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보이콧에 동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다만 “참석과 관련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다. 결정되면 (언론에) 알려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외교부도 같은 입장이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국의 ‘외교적 보이콧’ 동참 여부 질문에 “(외교적 보이콧을 하면) 선수들은 참 외로울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압박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저희는 어떤 고려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최 차관은 “중요한 것은 평창, 도쿄,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릴레이 올림픽”이라며 “저희는 직전 (동계올림픽) 주최국으로서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저희는 어떤 결정도 하고 있지 않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호주 방문이 미·중 갈등 속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엔 “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고 했다.

◇바이든은 중·러 겨냥하는데, 文대통령은 “백신접종 거부, 민주주의 위기”

문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시각차를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각) 회의 모두발언에서 “외부 독재자들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키우고 억압적 정책을 정당화하려 한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직접 겨냥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우연히 얻어지지 않는다”며 “우리는 정의와 법치, 의사표현과 집회, 언론과 종교의 자유, 모든 개인의 인권 존중을 수호해야 한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각)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와 달랐다. 12개국이 참여한 본회의(Leaders’ Plenary) 첫 번째 세션에 발언자로 참석한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중국과 러시아가 아닌, ‘가짜뉴스’에서 찾았다. 문 대통령은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들 안에서도 포퓰리즘과 극단주의가 커지고 있다”며 “가짜뉴스가 진실을 가리고,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심지어 방역과 백신접종을 방해해도 민주주의 제도는 속수무책이다. 민주주의의 역설이라고 할 만하다”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코로나19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원인이라고 했다. 화상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가짜뉴스가 혐오와 증오, 포퓰리즘과 극단주의를 퍼뜨리고 심지어 백신접종 거부를 부추기고 있다”며 “한국은 이웃과 함께 누리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임을 방역과 백신접종, 일상 회복을 통해 증명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번 회의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한중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점을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중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을 삼가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