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신임 일본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가 12일 현재 성사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통화를 조율 중”이라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일본 언론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총선을 의식해 문 대통령과 통화를 미룬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1일 도쿄 중의원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취임한 기시다 총리는 1차로 5개국 정상과 취임 인사를 나누는 전화 외교를 했다. 취임 이튿날인 5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에 이어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및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전화로 취임 인사를 나눴다.

1차 통화 대상은 일본이 동맹국으로 부르는 미국, 준동맹국으로 칭하는 호주 등 중국 견제 외교 동맹체인 ‘쿼드(Quad)’ 멤버 국가 정상들과 중국·러시아였다. 통화 시간은 바이든 대통령과 모리슨 총리가 각각 20분으로 가장 짧았고, 시 주석이 30분으로 가장 길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1일 TV도쿄 인터뷰에서 “일본 외교의 기축은 일미(미일) 동맹”이라며 첫 대면 회담을 하고 싶은 정상으로 바이든 대통령을 꼽은 바 있다.

기시다 총리의 전화 통화는 취임 9일째이지만, 아직 예정돼 있지 않다. 작년 9월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취임 9일째 문 대통령과 첫 통화를 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재 기시다 총리와 통화를 조율 중”이라며 “일정이 결정되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일본 외무성과 총리실이 기시다 총리가 조기에 통화할 국가 그룹에 한국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인식을 같이 했다고 보도했다. 오는 31일로 예정된 중의원 선거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집권 자민당의 지지 기반인 보수층에서 기시다 총리가 중국이나 한국에 저자세를 보일 수 있다는 시각을 의식한 행보라는 것이다. 닛케이는 문 대통령과의 통화 순서를 늦춤으로써 한국과의 외교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떨쳐내려는 것으로 분석했다.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내 파벌인 고치카이(宏池會·일명 기시다파)는 전통적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외교 노선에서도 온건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타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도 일본 측에선 기시다 총리가 당시 외무상으로 협상을 주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취임 직후의 정상 외교 순서는 새 총리가 어느 나라를 중시하는지 국내외에 던지는 메시지가 된다며 일본 총리실과 외무성이 시차와 상대국 사정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순서를 검토해 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