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31일 블록체인 기술 육성과 가상자산 시장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가상자산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가상자산 거래 소득에 대한 과세 추진과 관리방안에 대해 비판하며 가상자산에 대한 개념 확립과 소비자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가상자산에 대한 입장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이 혼란을 겪는 가운데 국민의힘이 선제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상자산특별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대표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가상자산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및 1차 회의를 열고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으로 발생하는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한다”며 “재주는 개인이, 돈은 정부가 번다는 심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피해 예방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투명하고 관리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까지는 세금을 거둘 자격이 없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28일 가상화폐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가상화폐 양도차익에 과세를 예정대로 내년부터 실시하고, 관리·감독은 금융위원회가, 블록체인 가술 발전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는다는 등이 주요 내용이다. 김 권한대행은 “부처 간 교통정리 수준에 머물렀다”며 “가상화폐 발행, 깜깜이 상장, 허위 공시 등에 대한 대책도 빠져있어 관리·감독은 여전히 사각지대”라고 했다.

김 권한대행은 현재 한국의 가상화폐 시장에 대해 “우리나라 가상자산 거래소 가운데 실명 인증 계좌는 지난 2월을 기준으로 250만여개에 이르며, 투자자 예탁금은 4조6000억원, 일일 거래량은 20조원 이상의 규모”라고 했다. 이어 “특히 2030 투자자 비율이 60%에 이를 만큼 2030 세대의 가상자산 투자 열기가 과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부동산값이 폭등해 평생 근면성실하게 살아도 내 집 한 채 마련하지 못 한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했고, 정부만 믿다가는 ‘벼락거지’가 된다는 심리가 확산됐다”면서 “‘영끌’이라도해서 주식과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정부는 그간 가상자산 문제를 제도권 금융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가상자산 성격도 규정하지 못한 채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해놓고 있었다”며 “지난 4년간 가상자산 관련 범죄 피해도 무려 5조 5000억원이 넘을 만큼 (가상자산) 시장은 무정부 상태”라고 했다.

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오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1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1.24% 오른 4천300만원대로 올랐다.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시장 자율규제를 벗어난 과열 양상으로 투자자 보호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지만, 정부가 발표한 가상자산 관리방안은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라며 “가상자산의 정의도 못 내리면서 국민에게 경제적 부담만 지우겠다는 정부의 발상에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가상자산특별위원회위원장은 성일종 의원이, 간사는 윤창현 의원이 맡았으며, 유경준·강민국·조명희 의원 등 당 소속 위원과 외부위원으로 구성됐다.

◇부동산 이어 가상자산…與 갈팡질팡하는 사이 연이어 선제적 입장

더불어민주당은 가상자산 관련 문제를 놓고 당내 이견을 보이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장인 고용진 민주당 의원은 가상자산 거래 소득에 대한 과세에 대해 국제적 흐름과 다른 자산과의 과세 형평을 들며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 반면, 이재명 경기도 지사·국회 정무위원회 간사 김병욱 의원 등은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이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는 이르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가상자산특위 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은 “정부는 가상자산일지, 화폐로 할지 아니면 암호화폐로 할 것인지, 코인으로 할 것인지 개념도 안 정했다”며 “이렇게 해 놓고 지금 세금부터 매기겠다는 것이 정부 역할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재가치가 없는 코인도 있지만 가상세계에서 수익이 창출되는 분야도 있다”며 “이해 못하는 사람이 정부에 있어선 안 된다. 정부는 개념 정리, 역할 정립부터 한 뒤에 과세 문제를 정리해달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여당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선제적 입장을 취하는 모습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4일 국민의힘은 무주택자의 대출 규제(LTV·주택담보대출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와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한시적 폐지, 공시가격 상한제 등 세(稅) 부담 경감과 대출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여당과 정부가 보유세 완화 등 부동산 정책 개편에 돌입했지만 당내 친문(親文) 의원들의 반발로 갈팡질팡하는 사이 국민의힘이 먼저 부동산 정책 개편안을 제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