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시계도 예상보다 느려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 기준금리차가 역대 최대인 2%포인트(p)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인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준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5.25~5.50%인 현행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작년 9월, 11월, 12월에 이어 네 차례 연속 동결한 것이다. 이는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 3월 인하 기대감 거둬들인 월가… 5월 FOMC로 쏠리는 눈

연준의 발표 직후 시장에서는 3월 금리 인하 기대를 빠르게 거둬들이고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한국시각 1일 오후 2시 현재 연방기금(FF) 금리 선물시장 참가자들은 3월 금리인하 가능성을 35.5%로 보고 있다. 연준의 발표 직전까지만해도 인하 확률이 55%를 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31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파월 의장도 금리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내비치면서 시장의 기대를 빠르게 잠재웠다. 그는 FOMC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 어느 시점에서는 정책 제한 정도를 줄이기 시작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면서도 “3월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만큼) 확신에 도달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로 향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열린 FOMC에서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며 시장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이번 긴축 국면에서 기준금리는 정점이나 그 근처에 도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연준 회의에서 금리인하 시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직전 FOMC에서 시장을 환호케 했던 파월 의장이, 이번엔 ‘당장은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박미정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정책기조가 중립적으로 전환된 가운데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신중한 통화정책 스탠스를 유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경제성장 및 인플레이션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관련 불확실성 등을 근거로 조기 금리인하 기대를 차단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 시점이 그리 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물가가 안정화되는 가운데, 고금리로 인한 부작용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2.9% 오르면서 2%대로 진입했다. 그러나 동시에 도심 오피스 가격의 하락폭도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솟았다.

씨티은행은 “파월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둔화를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면서 6월 금리인하 시작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웰스파고는 5월 25bp(1bp=0.01%포인트) 인하, 올해 말까지 100bp 추가 인하를 예상했다. 모건스탠리도 연준이 6월을 시작으로 올해 총 4차례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 한은도 금리인하 속도조절… 시장선 “2~3분기 인하 시작” 전망

연준이 당분간 긴축기조를 유지할 경우 한은의 금리 인하 시계도 느려질 전망이다. 한·미 금리 역전차가 7개월째 2%p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한은이 연준보다 먼저 금리를 낮출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3.5%로, 1년째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제2회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서 '2024년 한국경제 전망'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물가가 여전히 높고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난 것도 금리 인하를 막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2% 오르면서 5개월째 3%대 상승률을 유지했다. 작년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95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가계대출 잔액은 작년 6월부터 매달 통계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러한 점을 우려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2회 한국최고경영자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춘 것은 수출 면에선 좋은 소식이지만, 금리 면에서는 우리나라 통화정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 “우리 금리인하 속도는 더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은의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한 국내 시장 관계자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김상훈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달 중순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위원들은 향후 6개월정도 시계를 두고봤을 때 금리 인하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도 빨라야 2분기 말로 예상되는 만큼, 한은은 3분기부터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실물경기만 보면 당장은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없지만, 2월부터 연준을 자극할만한 부정적인 요소들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라면서 “연준의 금리인하는 2분기에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한은도 연준의 결정을 지켜보면서 2분기에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