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미승인된 LMO 주키니 호박이 유통된 것을 확인한 정부는 주키니호박에 대해 대대적인 반품 조치를 내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정부가 작년 7월 국회에 ‘유전자변형생물체(LMO)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하고 1년가량의 시간이 지났지만, 법안 처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LMO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가 지금처럼 지속하면 미래 먹거리 확보의 열쇠가 될 생명공학 분야 연구를 제한해 식량 안보를 위협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LMO법은 정부가 발의하고 두 달 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전체회의에 한번 상정된 이후, 논의가 멈췄다. 산자위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전체회의에 상정된 이후, 추가로 정부에서 건의 안건으로 제출한 적이 없다”면서 “첨단전략산업법 등 당면 현안에 밀려 후순위로 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출한 LMO법은 LMO의 초기 단계로 유전적 안전성이 확보된 유전자교정(GE) 생물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자는 내용이다. 산업부를 중심으로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7개 부처가 장기간 논의를 거쳐 마련한 법안이다.

현재 국내에선 외국에서 수입한 GMO 식품이 정상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간장과 된장을 비롯해, 식용유와 카놀라유 등 상당수 가공식품에 GMO 콩과 옥수수가 원료로 들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GMO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외국에서 생산한 GMO를 국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열려 있지만, GMO를 국내에서 개발하거나 재배하는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생명공학계에서는 GMO에 대한 폐쇄적인 시각을 개선하고, 생명공학 기술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세계 29국 GMO 생산 허용…국내선 재배 불허

LMO(Living Modified Organisms) 혹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는 유전자를 재조합해 만든 것을 말한다. 비슷한 개념이지만 LMO라는 용어는 ‘살아있는’, 즉 가공되지 않은 곡물이나 채소에 주로 사용한다. 과학계에서는 LMO보다는 GMO, 혹은 GM이라는 표현을 널리 사용한다.

GMO는 기후 변화와 질병, 해충 등에 대한 내성을 높여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특정 병 인자에 약한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다른 유전자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영양성을 높이거나, 소비자 기호 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GMO에 대해선 두 개의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도울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과 조작된 유전자가 인간이나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다. 아직까지 GMO가 인체에 해를 끼쳤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유전자 간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게 후자의 의견이다.

현재 세계에선 29개 나라가 GMO를 공식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호주, 브라질,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 대부분 농업강국이다.

한국은 GMO를 수입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재배가 승인된 종자는 없다. 올해 초 LMO 주키니 호박 종자가 국내에서 재배 및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농식품부와 식약처에서는 전국적으로 주키니 호박 출하를 중단하고 긴급 회수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는 회수한 LMO 주키니 호박에 대해 “미국과 캐나다에선 1995년 이후 안전성이 확보돼 승인·섭취하고 있다”며 “성분도 일반 호박과 차이가 없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LMO에 대한 소비자의 공포심이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국민적 우려 확산에 농식품부는 지난 6일 LMO 종자 수입 및 유통 개선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수입 과정에서의 검사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검역 신고를 하지 않은 자에 대한 ‘과태료’를 ‘벌금’으로 상향하고, 부과되는 금액 범위도 10만~40만원에서 300만원 이하로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멕시코의 노동자가 미국에서 수입된 GMO 노란 옥수수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GMO’는 미래 기술, 외국서도 낙인 지우기 노력

국내에서 GMO 생산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다만 유해성 심사 등 절차가 까다로워 사실상 재배가 불가능한 상태다. 검역당국의 유해성 심사를 통과한 GMO는 현재까지 전무하다. 유해성 심사는 인체를 비롯해 생태계 영향성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심사가 까다롭고 장시간이 소요돼 최근 들어선 바이오 기업들이 국내 심사는 밟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이에 정부는 GMO의 초기 단계인 ‘GE’(Genome Editing)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바이오산업에 동력을 넣자는 내용의 LMO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GE는 유전자 가위 기술로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생물체를 지칭한다. 인위적으로 개발한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 특정 병을 유발하는 인자만 제거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제출한 법안에서 “유전자가위 등 신기술을 적용한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개발·이용을 촉진하고 바이오산업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유전자변형생물체가 자연적 돌연변이 수준의 안전성을 갖춘 경우에는 위해성심사 등의 면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미국은 GE 기술에 대해선 ‘GM 규제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인 툴젠은 자체 GE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콩에 대해 미국에 심사 신청을 했는데, 미국 당국에선 “유전자 조작 기술이 안 들어가, GMO 규제와 무관하다”며 품종 등록을 승인하기도 했다.

미국은 GMO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기 위해 아예 용어 자체도 수정했다. 미 농무부는 지난해부터 GMO 대신 ‘BE(생명공학, Bioengineered)식품’, ‘DB(생명공학적 제조과정을 거친, Derived from Bioengineering)식품’ 등의 용어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유전자 변형 대신 안전한 미래지향적인 기술로 인지하게 하기 위한 용어 변경”이라며 “선진국에서는 GMO를 이미 일상 속 생명과학기술로 받아들이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정부만 굳이 부정적 어감의 용어를 표기해야 하는 규제를 도입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탁상행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품종 개량을 할 때 유전자 조합 방식이 아닌 선별 교배를 통한 육종 개량 방식으로만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교배 육종이 GMO에 비해 더 심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형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농업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교배 육종도 유전자 변형(유전자들 간 재조합)을 일으킨다”며”유전자 변형 정도는 GMO에 비해 오히려 이런 전통 육종이 더 심한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시민단체 소비자기후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5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호텔 앞에서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 수입통관시스템 강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농진청 산하 GM작물개발사업단, 文 정부 때 해체

한국 정부도 GMO 개발에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01년부터 GM작물 개발을 목적으로 유전자 변형·분석을 담당할 ‘GM작물개발사업단’을 농촌진흥청 산하에 뒀다.

수천억원의 예산과 수백명의 전문연구자가 참여해 GM 작물 연구에 나섰지만, 이 조직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 해체됐다. 이전 정부는 그린바이오 기술의 국제 경쟁력 확보를 명분으로 환경단체와 농민단체의 ‘반(反)GMO 운동’을 버텼지만 문재인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이를 수용한 것이다.

시민단체의 요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농진청은 GM작물개발사업단 해체 한달 뒤인, 2017년 10월 시민단체 관계자 10명과 학계 전문가 10명 등 20명으로 구성된 농생명위원회를 출범했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위원회에서 향후 GM 작물 개발을 위한 국가 연구과제 평가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생명공학 비전문가가 연구과제 평가에 참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발했고, 이 일로 농생명위원회는 파국을 맞았다.

전문가들은 GMO에 대해 국민들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후위기, 감염병 팬데믹, 고령화에 대응하면서 국민을 제대로 먹여 살릴 수 있는 길은 작물의 생산성과 기능성을 대폭 향상시키는 것”이라며 “고온, 건조, 병충해 등 환경변화에 견디면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성분을 크게 증가시킨 품종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곽 책임연구원은 “현재 대한민국의 생명공학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고부가가치 품종을 개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며 “규제 일변도 정책과 관계 부처의 무관심으로 GM작물을 방치하는 것은 식량안보라는 국가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현실적으로 가공식품은 GMO를 피할 수가 없고 완전한 GMO의 제로 섭취 또한 불가능하다”며 “엄격한 규제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을 자극하기 보다는 글로벌 미래 신기술 확보 전쟁의 핵심인 생명과학기술(BT)로 인식하여 국민들이 충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열린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LMO 관련 규제는 농식품부 외에도 과기부, 산업부, 식약처 등 여러 부처가 얽혀 있어 논의 과정이 쉽지 않다”면서 “LMO와 GMO에 대한 소비자 인식 등 국내 여건도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