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매파(통화긴축 선호)적인 발언으로 연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식으면서 국고채 금리가 두 달 만에 기준금리(연 3.5%)를 넘어섰다. 이 총재는 지난 25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3연속 동결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물가가 확실하게 2% 목표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증거가 있기 전까지 금리 인하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나아가 최종금리 수준을 3.75%로 제시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이 총재는 “한국이 금리 인상을 절대로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종료 시점과 물가 둔화 속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고금리 장기화로 취약계층 부실 위험이 커졌다”고 강조한 점을 들어 연내 추가로 금리를 올리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뉴스1

◇ ‘연내 금리인하’ 기대 꺾이자 국채금리, 기준금리 상회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날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36bp(1bp=0.01%포인트) 상승한 연 3.56%에 마감했다. 3년물 금리는 5월 금통위가 열린 다음날인 26일부터 기준금리를 상회했다. 지난 3월 13일 이후 약 두 달 만에 국채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도는 역전 현상이 해소된 것이다.

이날 5년물과 10년물 국채 금리도 각각 32bp, 12bp씩 오른 3.582%, 3.651%을 기록했다. 국채 금리는 전 구간에서 기준금리를 웃돌았다.

최근 두 달 동안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이 사실상 끝났고, 연준이 긴축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국채 금리도 기준금리 밑으로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빠르면 연내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이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매파적인 메시지를 내놓은 데다, 연준이 이달 공개한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물가상승률을 2% 목표로 되돌리려면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일부 위원들의 발언이 확인되면서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 기대감이 꺾였고, 이에 따라 국채 금리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모습.ⓒ News1 송원영 기자

◇ 한은 “고금리 지속되면 취약부문 위험 부실화 우려”

채권시장에서는 연준이 6월이나 7월에 기준금리를 0.25%p 한 차례 추가 인상할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한국은행이 연내 추가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고 보고 있다. 이 총재가 매파적인 발언을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이날 발간한 ‘5월 경제전망 보고서’에는 금리 동결을 강하게 시사하는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은행은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 기존 1.6%에서 1.4%로 낮췄다. 이와 함께 ‘금리인상 이후 우리경제 평가 및 시사점’이라는 심층 분석 보고서를 내고 그간 누적된 금리인상과 부동산 경기 부진 등으로 취약부문 부실 위험이 커졌다고 언급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가파른 금리 인상과 중국의 봉쇄 조치로 수출이 타격을 받았지만, 가계와 기업은 당초 우려보다 금리 인상 충격을 잘 견뎌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가계와 기업이 (금리인상 과정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았으나 팬데믹 특수와 초과 저축, 고용 안정 등이 완충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그러나 갈수록 민간의 완충 여력이 줄어들면서 고금리 충격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한국은행은 평가했다. 보고서는 “주요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으나,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취약 부문 리스크(위험)가 현실화될 우려가 커졌다”고 했다.

최근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한 취약부문으로는 저소득층 대출 연체율 상승, 한계기업 도산 위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화 가능성 등이 꼽힌다. 모두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불어난 부채가 최근 고금리,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생긴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취약부문 위험이 터질 경우 다른 부문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며 “이런 관점에서 국내 경제는 인플레이션 리스크와 함께 경기 하방, 금융불안 리스크가 모두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한국은행이 누적된 금리인상의 파급효과를 다룬 보고서를 따로 작성할 정도로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연말까지 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물가 둔화 추세가 바뀌지 않는 한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만으로 추가 인상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을 1%대 초반에서 방어할 여력이 충분한데다 연준의 금리 인하 없이 한국은행의 독자적인 금리 인하가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연내 동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