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60조원 넘는 초과 세수를 문제 삼아 세제실에 문책성 인사까지 단행했던 기획재정부가 불과 1년 만에 세수 펑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올해 1%대 성장률이 예상될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보유세 산정의 기초가 되는 공시가격마저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년 말 국회를 통과한 감세 관련 조치들도 올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터라 이래저래 세수가 줄어들 일만 많은 상황이다. 올해 국세 감면액은 7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내년부터는 대규모 세제 혜택을 주는 국가전략기술에 수소와 미래차가 추가된 영향도 받는다. 경기 부양을 위한 선택이지만, 나라 곳간 관리 측면에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재정 당국은 “아직 연초인 만큼 세수 동향을 더 지켜봐야 한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당장은 다음 달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 조치의 연장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기준 전국 공동주택 1486만 가구의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19%가량 하락했다. 사진은 3월 26일 서울 남산에서 시민들이 시내를 바라보는 모습. / 연합뉴스

◇ 정부 예상보다 더 나쁜 연초 세수 상황

2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올해 1월 기준 국세 수입 실적을 집계한 이후 예상보다 저조한 진도율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1월 국세 수입은 42조9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조8000억원 감소했다. 1월 기준 역대 최대 감소 폭이다. 올해 국세 수입 예산 대비 진도율도 1월 기준 10.7%로, 2005년 1월(10.5%) 이후 1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세목별로 보면 부가가치세가 3조7000억원 감소해 가장 크게 줄었다. 부동산 거래 위축의 영향으로 소득세도 8000억원 줄었다. 법인세는 7000억원 감소했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올해 세입 여건이 상당히 타이트(tight)하다”며 “세수 상황이 세입 예산 편성 당시(2022년 8월) 예측한 대로 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재정 당국이 세수 감소를 예견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작년부터 심화한 국내외 경기 하강의 여파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1.6%(정부 전망)에 머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고용 둔화와 민간소비 위축은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 유입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 정책관은 “예측대로 가지 않는다”는 말로 연초 재정 동향이 정부 시나리오를 벗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정부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1.6%로 내다봤다. 경기 둔화에 따른 민간소비 위축은 정부 세수에 악영향을 미친다. 3월 13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구매할 제품을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 공시가격도 추락…종부세에 법인·소득세도 감소 예정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공동주택의 공시가격마저 추락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1월 1일 기준 전국 공동주택 1486만 가구의 공시가를 지난해보다 평균 18.61% 하향 조정했다. 해당 제도 도입 이래 최대 하락 폭이다. 공시가격이 내려간 사실 자체도 2013년 이후 10년 만이다. 이에 따라 공시가에 연동되는 재산세·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1가구 1주택 보유세는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작년 8월 기재부는 다음 연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올해 종부세가 5조7000억원 걷힐 것으로 봤다. 당시만 해도 국내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본격화하기 전이어서 정부도 공시가격이 대체로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종부세를 내다봤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정부와 마찬가지로 올해 공시가격 변동이 없을 것으로 가정하고 세수를 추계했다. 그러나 막상 2023년이 되자 공시가격은 크게 하락했다.

세수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종부세 세수 감소가 있겠지만, 전체 재정 규모에서 큰 부분이라고 보긴 어렵다. 현재로서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최 수석은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국민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번 하락으로 국민 부담이 줄고 복지 혜택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3월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주택 공시가격 하락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세수 공백 우려에 대해 최 수석은 “현재로서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 연합뉴스

재정 당국은 법 개정에 따른 세수 감소도 각오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국회 예정처가 지난해 4분기 가결된 법률 중 15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3~2027년 우리나라 조세 수입은 연평균 17조4593억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3년도 조세지출 기본계획’을 통해 올해 국세 감면액 전망치를 69조3000억원으로 내다봤다.

◇ 공정시장가액비율·유류세 조정 만지작

내년부터는 국가전략기술에 주는 세제 혜택이 확대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이달 16일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8%에서 15%로 높이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또 반도체·백신·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4개이던 국가전략기술에 수소와 미래형 이동수단도 포함했다. 올해 국가전략기술에 주어지는 혜택은 내년 3월 법인세 신고 때부터 반영된다.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전경. / 기재부

날로 커지는 세수 펑크 우려에 대해 재정 당국은 말을 아끼지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2023년 세수는 이제 겨우 1월까지 발표했고 2월분은 현재 점검 중”이라며 “우선은 3~4월 법인세, 5월 종합소득세 등 굵직한 세수 동향까지 지켜봐야 대책이든 뭐든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정부는 내부적으로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종부세·재산세의 과세표준을 정할 때 공시가격에 곱하는 비율)을 지난해 60%에서 올해 80%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시가격이 낮아져도 공정시장가액비율 높아지면 세 부담은 비슷해진다. 또 4월 말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지 않는 것도 세수 충격 완화 방안의 하나로 언급된다. 현재 정부는 휘발유·경유 유류세를 각각 25%·37% 깎아주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작년 초 초과 세수 사태를 겪은 기재부 분위기가 불과 1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 급등으로 2021년 60조원에 이르는 초과 세수가 발생한 바 있다. 역대급 세수 추계 오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태주 당시 세제실장(현 새마을금고중앙회 금고감독위원장)이 사의를 했고, 기재부는 지난해 1월 윤태식 신임 세제실장(현 관세청장)을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