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를 빻는 기계에 똑같이 가루쌀을 제분할 수 있습니다.”

지난 22일 오후 충남 당진시 사조동아원 당진공장 제분소에 들어서자 백색의 제분 기계 수백대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가루쌀을 분쇄하고 부서진 입자를 크기별로 분류한 뒤 분쇄하고 체로 치는 과정들은 밀가루를 만드는 과정과 동일하게 진행된다. 가루쌀은 물에 불리지 않아도 분쇄할 수 있도록 만든 품종이다.

보통 밀은 제분, 쌀은 도정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밀가루를 대체할 방안으로 개발된 가루쌀은 밀가루와 똑같이 제분이 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되며 대량 생산화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됐다. 가루쌀은 밀가루의 불용성 단백질인 글루텐이 없는 글루텐 프리(gluten free)라는 특징이 있어 식품회사로부터 주목받는다.

가루쌀의 구조는 밀의 전분 구조와 비슷하다. 가루쌀은 밥쌀용 쌀과 달리 전분 구조가 밀처럼 둥글고 성글게 배열돼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다. 기존에 쌀을 빻을 때는 쌀을 물에 불려 분쇄하는 습식 제분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루쌀의 경우 밀 제분 방식과 동일하게 건식 제분을 할 수 있다. 쌀을 불리고 탈수하는 과정에서 폐수가 발생하지 않아 환경친화적이다.

사조동아원은 하루에 1200톤(t)을 제분한다. 이 중 가루쌀을 제분한 쌀가루는 8톤가량 생산된다. 사조동아원에서 제분한 쌀가루는 가루쌀 제품개발 식품 업체들로 간다. 라면, 케이크, 식빵, 과자 등 19개 제품개발을 시작한 회사들에 쌀가루를 보급하는 것이다. 가루쌀 제품 개발이 성공하고 판매량도 늘어나면 가루쌀 제분량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전망이다.

충남 당진시 사조동아원 당진공장 제분소. 제분소 관계자가 가루쌀을 제분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충남 당진시 사조동아원 당진공장 제분소에서 제분되기 전 상태의 가루쌀(우측)과 한 번 제분 과정을 거친 가루쌀. /김민정 기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가루쌀 제품개발 지원 사업자로 총 15곳의 식품업체를 선정했다. 농심, 삼양식품, 하림산업, SPC삼립, 해태제과, 풀무원 등 굵직한 대기업들이 가루쌀 제품 개발에 발 벗고 나섰다. 성심당, 이가자연면, 미듬영농조합법인, 대두식품 등에서도 가루쌀 사업에 뛰어들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사업자 공모에 총 77개 식품업체가 신청해 7.2: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면류 4종, 빵류 5종, 과자류 7종, 기타 3종의 가루쌀 제품이 총 15개 식품업체에서 개발된다. 면류의 경우 농심은 볶음사출면, 삼양식품은 짜장라면, 이가자연면은 칼국수, 하림산업은 라면을 밀가루 대신 가루쌀로 만드는 방법에 집중할 계획이다. 빵류의 경우 성심당에서는 시폰케이크와 식빵, SPC삼립에서는 파운드케이크 등 4종을 가루쌀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한다.

이날 가루쌀빵을 만들어 스타벅스와 마켓컬리, 쿠팡, 웰스토리 등에 납품하고 있는 미듬영농조합을 방문했다. 지난 2021년 기준 미듬영농조합의 쌀 소비량은 가루쌀 40톤을 포함해 490톤에 달했다.

미듬영농조합에서 만드는 대표적인 제품은 스타벅스 전 매장에서 만날 수 있는 라이스칩과 카스텔라다. 김태철 스타벅스 푸드파트장은 “라이스칩은 매장에 아이와 함께 온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먹이기 위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가루쌀빵을 만들어 스타벅스와 마켓컬리, 쿠팡, 웰스토리 등에 납품하고 있는 미듬영농조합.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미듬영농조합은 쌀 카스텔라와 밀가루 카스텔라를 만드는 데 원가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쌀 치아바타나 밀가루 치아바타를 만들 때는 원가가 1000원 이상 차이가 벌어진다. 가루쌀이 많이 들어가는 제품일수록 원가 차이가 난 것이다.

이에 원가가 높아지는 단점을 극복하고자 가루쌀빵에 특별함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대경 미듬영농조합 대표는 “가격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루쌀을 쌀 유산균으로 배양했다”면서 “유산균을 넣어 만드니 보통 빵의 유통기한인 5일보다 이틀 늘어나 7일까지 두고 먹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가루쌀 보급 확대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쌀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공급은 넘쳐나고 있어 가루쌀을 새로운 식품 원료로 내세운다. 쌀이 과잉 생산되자 가격이 하락하고, 시장격리 비용으로 인해 재정 부담이 커지는 문제 해결을 위해 가루쌀 재배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밥 대신 빵을 더 많이 먹는 식습관도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줬다. 농식품부는 면과 빵, 과자에 들어가는 밀가루 대신 가루쌀로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가루쌀 생산량은 올해 1만톤에서 2026년 20만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가루쌀 재배 농가에는 전략작물직불금을 지급한다. 가루쌀을 단일 재배할 경우 ha(헥타르)당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올해 전략작물직불 예산으로는 1121억원이 쓰인다.

우리나라와 농업 환경이 유사한 일본도 쌀가루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의 가루용쌀 재배 면적과 생산량은 증가 추세를 보인다. 지난해 기준 가루용쌀 재배면적은 8000헥타르, 생산량은 4만3000톤에 달했다. 일본은 2030년까지 가루용쌀 재배를 2만3000헥타르 규모로 추진하고, 생산량을 13만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다만 일본은 건식 제분이 가능한 가루쌀 품종을 개발하지 못해 물에 불린 뒤 제분하는 습식 제분을 하고 있다. 제분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숙제도 동시에 안고 있는 셈이다.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가루쌀은 밥쌀의 구조적 생산 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식품 원료로서 식품산업 성장을 견인할 소재로써 주목받고 있다”라며 “가루쌀 제품 개발을 통해 소비자 수요에 맞는 가루쌀 제품 확산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