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 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7%로 낮추고, 일본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8%로 올려 잡았다.

IMF를 비롯한 주요 기관 외 양국 중앙은행과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의 예측을 종합해 보면, 올해 한국 경제는 약 1.5~1.6% 성장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본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대체로 1.7~1.8%에 수렴하고 있다. 주요 기관의 예상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과 일본의 성장률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약 25년 만에 처음으로 뒤집히게 된다.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처럼 장기 저(低)성장의 늪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일본 나고야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탑승수속 줄을 서고 있다. 2023.2.23 / 연합뉴스

◇ 日 관광객 회복에 내수·여행수지 개선 효과 기대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6%로 일본(1.1%)의 두 배 이상이었다. 지난 1968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 성장률이 일본보다 낮았던 해는 2차 오일쇼크 당시였던 1980년(-1.6%)과 외환위기 때인 1998년(-5.1%) 총 두 차례뿐이었다. 모두 대형 경제 위기가 발생했던 시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올해는 대형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일본 경제 성장률이 이례적으로 한국 성장률을 웃돌 것이란 관측이 나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IMF를 비롯한 주요 기관과 경제학계는 수출과 소비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는 한국과 달리 올해 일본은 관광객 유입에 힘입어 내수가 반등하는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을 주요한 이유로 꼽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국 관계자는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산업 생산이나 수출은 여전히 부진하지만, 올해부터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본격화하면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성장률이 작년보다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히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면 일본 서비스업 업황은 물론 경상수지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 기준 일본의 외국인 입국자수는 150만명을 기록했다. 아직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2019년의 월평균 입국자수 266만명의 약 56% 수준을 회복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57만명으로 38%를 차지했고, 대만 관광객도 26만명으로 17%에 달했다.

반면 우리나라 외국인 입국자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약 54만명으로 일본의 약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코로나 이전(월평균 146만명)의 약 37%에 수준으로 회복 속도가 일본보다 느리다.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해외 여행을 떠나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이미 만성 적자인 여행수지는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여행수지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각국의 방역 조치로 여행길이 막히면서 적자 폭이 크게 축소됐다가 최근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적자 규모가 커졌다.

◇ 고금리 직격탄 맞은 韓…일본은 아직도 마이너스 금리 고집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의 금리 인상 행보에도 일본은행은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한국과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 치솟는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2021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주요 기관은 고금리로 이자상환 부담이 커진 한국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나빠지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타 고피나스 IMF 수석부총재는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린 이유 중 하나로 고금리를 지목하면서 “금리가 오르면서 소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 경제에 대해 IMF는 “완화적인 재정·통화정책 지속과 엔저 효과로 인한 기업의 실적 회복에 힘입어 올해 1.8%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지평 한국외대 교수는 “현재 일본의 소비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보복소비가 나타난 미국, 한국 등과 같이 역동감이 크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12월 41년 만에 처음으로 4%대로 올라선 이후 2개월 연속 4%대를 기록한 데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점은 향후 내수 회복을 제약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지난해 4분기 일본 성장률은 연율 기준 0.6%로, 시장 예상치(2.0%)를 크게 밑돌았다. 스에히로 토루 다이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4분기 GDP 반등폭이 기대에 못 미쳤는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서 향후 소비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 후보가 24일 일본 도쿄 중의원(하원)에서 열린 청문회에 참석하고 있다. 우에다 후보는 이날 "일본은행이 실시하는 금융정책은 적절하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 “내년 한국 성장률, 다시 일본 추월”

전문가들은 한·일 성장률 역전 현상은 일시적이고 내년부터는 다시 한국의 성장률이 일본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봤다. 주요 기관은 내년 한국의 성장률은 2%대로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일본 성장률은 다시 2%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IMF는 올해 하반기부터 중국 경기와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수출이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내년에는 한국 경제가 2.6%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일본은 내년부터 경기 부양책 효과가 사라지면서 0.9%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봤다.

문제는 한국의 성장률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서 장기적으로 한·일 성장률 격차도 점차 좁혀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재 2% 수준인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10년 뒤에는 0%대로 떨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OECD는 현재 상황이 유지되는 가정 하에 2030~2060년 한국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이 0.8%로 OECD 평균(1.1%)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내년에도 경기가 개선될 것이란 신호가 현재까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