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찾은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어 온실에 들어서자 노란색 프리지어 물결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코끝에는 프리지어 특유의 은은한 향기가 맴돌았다. 눈길을 돌려보니 빨강, 보라, 진분홍, 흰색 등 갖가지 색의 프리지어가 줄지어 만개한 모습이었다.

졸업식 꽃으로 인기 있는 ‘프리지어’의 꽃말은 ‘새로운 시작’이다. 대표적인 승진 선물로 꼽히는 난(蘭)의 한 종류인 팔레놉시스는 ‘행복이 날아온다’는 꽃말을 품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새 출발을 함께하는 이 꽃들의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외국 품종 재배로 발생하는 로열티 부담을 줄이고, 우리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는 품종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어 온실에 골드리치가 무리지어 폈다. /전주=김민정 기자

◇ 졸업식 꽃 대명사 프리지어…국산 품종, 구근 부패병에 강해

프리지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노란색 프리지어에도 다양한 품종이 있다. 진황색 겹꽃인 골드리치, 진노랑 겹꽃인 써니골드, 연노란색 겹꽃인 스윗레몬 등이 그 주인공이다. 프리지어는 9월쯤 심기 시작해 2월 졸업 시기에 꽃을 잘라 판매하는 ‘절화’로 시장에 나온다. 졸업 시즌과 얼추 맞는다.

노란색 프리지어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한다. 그런데도 농촌진흥청이 다양한 색의 프리지어를 내놓는 것은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이다. 플로리스트가 다양한 색의 프리지어를 부케 등 결혼식장 장식에 사용하면서 노란색이 아닌 프리지어를 원하는 사람이 늘었다.

봄을 알리는 꽃인 프리지어는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30여 년 전부터 국내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농촌진흥청은 1999년부터 프리지어 품종 육성 연구에 발을 들였다. 농촌진흥청은 국내에서 많이 발생하는 바이러스를 미리 검정해 병 발생률이 적은 ‘무병묘’를 생산하고 보급하고 있다. 알뿌리로 번식하는 프리지어는 재배 과정에서 바이러스 등 균에 감염돼 종자가 퇴화하면 수확량이 줄어들고 품질도 저하된다.

프리지어 농가에서 품종을 고를 때 우선시하는 것은 얼마나 여러 번 수확할 수 있는지다. 여러 가닥으로 뻗어 나가며 자라는 프리지어는 분지(分枝) 별로 수확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최근 농가에서 4~5분지까지 수확할 수 있는 네덜란드산 솔레이를 선호하면서 농촌진흥청에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국산 품종인 ‘써니골드’ 보급에 주력하고 있다.

송현영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농업연구사는 “한창 국산 보급률이 높았을 때는 50~60%까지 올라섰는데, 최근에는 네덜란드산 프리지어의 시장 점유율이 치고 올라왔다”면서 “국산 품종이 해외 품종보다 더 높은 수확률을 거둘 수 있도록 개발하고 농가에 보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아 온실에 핑키핑키가 피어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아 온실에 루비스타가 피어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아 온실에 블루벨이 피어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아 온실에 폴인러브가 피어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아 온실에 핑크벨이 피어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어 온실에 핑키핑키가 피어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어 온실에 블루벨이 피어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프리지어 온실에 루비스타가 피어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노란색 프리지어 외에도 향기가 강한 빨간색 홑꽃인 ‘루비스타’와 겹꽃으로 꽃송이가 풍성한 진보라색 ‘블루벨’, 연노란색 ‘스윗레몬’, 흰색 ‘폴인러브’, 분홍색 ‘핑크벨’ 품종도 농가에 보급 중이다.

새로 내놓은 프리지어 품종은 바이러스 발생이 적고 알뿌리가 썩는 구근 부패병에도 강한 점이 특징이다. 꽃대가 곧게 자라고 향기가 진한 것도 장점이다. 농촌진흥청은 대부분 절화로 유통되는 프리지어뿐만 아니라 화분에서 키울 수 있는 프리지어 품종도 개발하고 있다.

◇ 승진 선물할 땐 ‘국산 난’…수출 시장 맞춤형 개발에 속도

새 시작을 축하하는 선물이자 ‘승진난’, ‘취임난’으로도 불리는 팔레놉시스도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산 난 품종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20.5% 수준이다. 2007년에는 국산 품종이 전혀 없었지만, 2010년 국산 품종 점유율 4%를 기록한 뒤 매년 꾸준히 성장해 20%대까지 올라섰다.

농촌진흥청은 국내 난 생산액의 44.2%, 11.9%를 차지하는 작목인 팔레놉시스와 서양 심비디움 품종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2010년 품종 육성을 시작한 농촌진흥청은 지난해까지 57품종을 개발했다. 2021년 팔레놉시스는 193억원, 심비디움은 51억원어치가 판매됐다.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팔레놉시스 온실. /전주=김민정 기자

팔레놉시스는 나비 모양의 꽃이 달려 ‘호접란’으로 불린다. 최근에는 아래쪽 꽃잎인 입술 꽃잎이 큰 ‘빅립’ 품종이 인기다. 과거 팔레놉시스는 형태가 비슷하고 색상이나 무늬, 크기만 다른 품종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빅립 등 새로운 화형의 품종이 등장했다.

‘러블리엔젤’은 농촌진흥청에서 2017년 개발한 최초의 빅립 품종이다. 꽃이 꽃대당 16개 정도가 달리고, 한 화분에서 2개의 꽃대가 동시에 뻗어 나가는 게 특징이다. 2019년 개발한 ‘아리아’는 크기가 작지만, 한 꽃대당 21개의 꽃이 달려 풍성한 느낌으로 연출할 수 있다.

심비디움의 꽃말은 ‘귀부인’이다. 기존에는 대형 화분에 심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꽃꽂이 용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16년 개발한 ‘러블리킹’은 밝은 분홍색에 입술 꽃잎의 중앙이 노란색을 띠는 중간 크기 품종이다. 꽃 크기가 크고 꽃대 발생 수는 평균 3.5대로 생산성이 우수하다. 국내뿐 아니라, 2020년 호주와 미국에 각각 300대(꽃대)씩 시범 수출해 해외시장으로 진출했다. 일본 꽃 시장에서는 우리나라 심비디움을 수입해 결혼식이나 파티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심비디움 온실에 웨딩파티가 피어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국가별로 선호하는 난의 색이나 모양이 달라 농촌진흥청은 다양한 품종의 난을 개발하고 있다. 안혜련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농업연구사는 “미국에서는 하얀색 난 품종이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어 수출용으로 개발 중”이라면서 “동남아 지역에서는 색이 강하고 문양이 있는 난을 선호하는 등 국가별 선호도가 달라 여러 품종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 국산화에 힘이 실리면서 외국 품종 재배로 인해 발생하는 로열티 부담도 줄어들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로열티 지급액은 2010년 25억1000만원에서 지난해 7억5000만원으로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