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임시번호판을 단 신차가 줄줄이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올해 말 종료하고 내년부터는 개소세율을 5%로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세운 가운데, 4년 넘게 이어진 개소세 인하 조치가 경기 부양 효과를 내기보다는 현대·기아차 등 특정 기업의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소세 인하는 소비자의 세금 부담을 줄여 소비를 자극하는 경기 부양책 중 하나다. 한시적인 세금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차량 구매 계획이 있는 소비자들의 소비를 앞당기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가 우려될 때마다 정부가 ‘자동차 개소세 인하’ 카드를 꺼내 드는 이유이다.

문제는 개소세 인하 조치가 장기화하면서 미래의 소비를 앞당기는 효과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점이다. 오히려 자동차기업들이 개소세 인하 조치 종료 시점에 맞춰 구매 특전을 제공하면서 ‘재고 처리용 판촉 이벤트’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점유율도, 영업이익도’…개소세 인하 혜택 톡톡히 본 현대기아차

12일 기획재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8년 7월부터 승용차 개소세율을 5%에서 3.5%로 30% 인하했다. 2020년 1~2월 두 달간 5%로 환원했지만, 곧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같은 해 3~6월은 70% 인하한 1.5%의 세율을 적용했다. 그 이후로 개소세율 3.5%를 계속 유지해 왔다.

만약 소비자가 출고가 5000만원짜리 승용차를 산다면 개소세(5%)로 250만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개소세가 인하되면서 실제 내는 개소세는 175만원, 정상 세율과 비교했을 때 75만원이 줄어든다.

작년 한해 동안 정부가 걷어들인 자동차 개소세액은 총 1조4191억원, 정상적인 개소세율을 적용했다면 자동차 개소세수가 1조9000억~2조원 규모가 됐을 것이라는 게 기재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로선 5000억원 규모의 세수를 내수 진작을 위한 기회비용으로 쓴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개소세 인하 효과가 완성차 업체, 특히 국내 자동차 시장 압도적 1위인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 확대와 수익성 확대로 대부분 전이됐다는 점이다.

그래픽=이은현

개소세 인하가 시행되지 않은 2017년 현대차는 1년 동안 68만8939대, 기아차는 52만1550대의 차량을 팔았다. 현대·기아·쉐보레(당시 GM대우)·쌍용·르노 등 국내 완성차 5개 사의 2017년 내수 판매 대수는 155만 대, 현대·기아차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78.1%였다. 지난해엔 현대차가 72만6838만 대, 기아차가 53만5016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두 회사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88.0%, 4년 새 시장 점유율이 10%포인트(p)가량 늘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해외여행 등 여가성 지출이 감소하고, 재난지원금 등으로 풀린 자금은 가계의 구매력을 키웠다. 여기에 증시 및 가상화폐 시장 호황까지 얹어지면서 신차 수요가 급증했다.

급격한 수요 증가를 공급이 쫓아가지 못하면서 신차 수령 대기 기간은 급격히 늘었다. 최근 현대차가 출시한 신형 ‘디 올 뉴그랜저’의 경우 지금 주문해도 1년 뒤에나 수령이 가능한 상황이다. 제네시스G80 역시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 20개월 이상 대기해야 차량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내수 시장 호조는 현대·기아차의 어닝서프라이즈를 견인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 117조6106억원에 6조678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 장기화로 판매 자체는 줄었지만, 제네시스와 전기자동차 중심의 판매 믹스 개선 효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했다.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 5 생산라인. /현대차그룹 제공

◇ 세금 줄여도 출고가 인상에 소비자 부담은 여전

개소세 인하 조치 종료를 앞두고 자동차 업계에서는 ‘개소세 인하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남훈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지난 5일 ‘2022년 자동차산업 평가 및 2023년 전망’ 보고서에서 “경기 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자동차에 대한 소비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 “코로나19와 공급망 차질로 자동차 업계에 한계에 직면한 만큼 개소세 감면 연장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신차를 받으려면 수십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자동차 산업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구조를 봤을 때, 개소세 인하 혜택이 특정 기업에 몰린다는 점에서 형평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는 평가도 정부에 부담이다.

시장에서는 자동차 기업들이 개소세 인하 혜택을 토대로, 출고가를 올려 ‘카플레이션’(카+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소세 인하로 최대 100만원까지 소비자 부담이 줄지만, 자동차 기업들이 신차를 출시하면서 출고가를 기존동급 차량보다 200만~300만원가량 올리면서 세제 혜택이 상쇄됐기 때문이다. 개소세 인하 조치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 각 회사들이 실시하는 특별 할인·할부 이자 감면·유류비 지원 등의 판촉행사는 ‘가격 인하 여력’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부의 개소세 인하 조치 연장·종료를 놓고 산업계와 국민들이 ‘눈치 싸움’을 벌이는 게 시장의 안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개소세 인하 종료를 앞두고 ‘막차 탑승’식 판촉전으로 차량 판매량이 반짝 늘었다가 ‘판매 절벽’을 맞닥뜨리고, 자동차 소비 침체에 다시 정부가 개소세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신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개소세 인하 시기 때까지 구매를 미뤄 불황기 한파가 더욱 매서워진다. 이와 관련,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내구재 소비가 크게 늘어 향후 개소세 인하로 인한 내수 진작을 기대하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내년 경기 둔화에 따른 소비 위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개소세 인하 조치가 종료되면 차 시장이 상당한 혹한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개소세가 도입된 배경이 사치성 물품의 소비 억제를 위한 것이라며 자동차에 대한 개소세 부과를 원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빛마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재정전망센터장은 “과거 개소세가 도입된 시점과 달리 지금은 자동차를 사치재로 보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세수도 고려해야겠지만, 한시적인 인하 조치를 연장해가며 유지하는 것보단 사회적 논의를 거쳐 폐지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