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이달 2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달 빅스텝(0.5%포인트 금리인상)의 근거였던 물가와 환율이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대로 여전히 높지만, 지난 7월(6.3%)에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 미국의 10월 물가상승률이 7%대로 떨어지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그 결과 1400원을 웃돌던 원·달러 환율도 최근 1320원대로 급락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물가 정점 통과에 “美 금리인상 속도 늦출 것”

15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연준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5연속 0.75%p 인상하는 대신 0.5%p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준이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한국은행도 이달 금리 인상폭을 0.25%p로 낮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연준의 금리인상폭을 가늠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연준이 다음달 기준금리를 0.5%p 올릴 확률은 83%에 달했다. 반면 0.75%p 금리 인상 가능성은 17%에 그쳤다.

시장에서 연준이 다음달 빅스텝을 밟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한 이유는 미국의 10월 물가상승률이 8개월 만에 7%대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7.7% 상승해 시장 전문가 전망치(7.9%)를 밑돌았다.

앞서 연준은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4연속 기준금리를 0.75%p 올리는 공격적인 긴축 행보를 이어왔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지난 3월 8%를 넘어선 뒤 6월에 9.1%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에도 9월까지 3개월 연속 8%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이 지난달 7%대로 둔화되면서 연준도 낮아진 물가 지표에 맞춰 금리 인상폭을 0.5%p 수준으로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5%대 고(高)물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10월 물가상승률은 5.7%로 전월 대비 상승폭이 3개월 만에 확대됐다. 전기요금을 포함한 공공요금이 인상된 영향이 컸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시 물가 고점은 여름에 이미 통과한 데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꺾이면서 추가 물가 급등에 대한 우려는 누그러진 상태다.

그래픽=이은현

◇ “통화정책 결정에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

그간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원·달러 환율도 두 달 만에 1300원대로 내려왔다. 미 인플레이션 둔화 조짐에 연준의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가까워졌다는 기대감에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9일 기준 110선에서 현재 107선까지 떨어졌다.

그 여파로 원화 가치는 지난 11일 하루에만 60원 가까이 상승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난 발표한 국민연금 등 12개 공적 투자자 환헤지 비율 상향 조정 방안에 따라 약 400억달러가 외환시장에 공급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연준의 긴축 속도 조절에 힘입어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안정될 경우 국내 물가 상승 압력도 이전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지난달 0.5%p 금리인상 근거였던 환율 쏠림 현상과 물가 불안이 일부 완화되면서 2연속 빅스텝을 밟을 명분이 줄어든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긴축적 통화기조를 유지해 인플레이션 수준을 낮추는 것은 여전히 한국은행의 우선 과제”라면서도 “최근 들어서는 인플레이션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도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은 이어가겠지만, 인상폭은 줄이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최근 레고랜드발(發) 자금시장 경색으로 금융 안정에 신경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커지고 있는 데다, 국내외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점도 큰 폭의 금리 인상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0.5%포인트 금리인상에 찬성표를 던진 박기영 금통위원도 지난 11일 “지금은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 할 때”라고 말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지난달 빅스텝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낸 한 금통위원은 “고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과도한 금리인상은 중기적으로 성장 경로의 추가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지난달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한은, 11월과 내년 1월 0.25%p 금리인상…최종금리 연 3.5~3.75%”

채권시장에서도 한국은행이 11월에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하고, 내년 초까지 금리를 추가 0.25%p 올린 뒤 연 3.5~3.75%에서 금리 인상 사이클을 종료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창용 총재는 최근 한은이 국내 신용 시장의 스트레스 증가에 따른 금융안정을 통화정책에 고려할 것임을 시사했다”며 “한은이 11월과 내년 1월에 금리를 0.25%p 올려 최종금리는 3.5%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주부터 원·달러 환율은 1410원에서 1310원대로 급락했고 미국 10월 물가 지표를 계기로 연준의 12월 0.5%p 금리 인상 가능성은 높아졌다”며 “최근 상황 변화를 고려할 때 11월 금통위에서 한은도 금리를 0.25%p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고, 내년에도 0.25%p씩 추가로 금리를 올려 최종 금리는 3.75%로 예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