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월 대비 둔화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통과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치솟던 물가가 한풀 꺾이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는 대신 금리 인상폭을 0.5%p로 낮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약 2~3개월의 시차를 두고 물가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 월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 / 연합뉴스

◇ 美 7월 물가상승률 8.5% 전망치 하회

미국 노동부는 지난 11일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8.5%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41년 만에 최고 치를 기록했던 전월(9.1%)보다 상승폭이 크게 줄었다. 시장 전망치(8.7%)도 밑돌았다.

국제유가 하락과 함께 에너지 가격이 전월 대비 4.6%, 휘발유 가격이 7.7% 하락한 영향이 컸다. 다만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5.9%로 전월 대비 0.3% 올랐다.

이번 물가 발표 이후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연준은 물가 억제를 목표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두 차례 연속 밟았다. 당초 시장에서는 연준이 강한 노동시장을 근거로 9월까지 연속으로 금리를 0.75%p 올릴 것이라고 봤지만, 7월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둔화되면서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 전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월을 정점으로 상승세가 한풀 꺾인 것으로 보인다”며 “7월 소비자물가 발표 이후 0.5%p 금리인상 확률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미 주택과 노동시장 내 서비스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물가 둔화세는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났지만, 물가상승률이 꾸준히 하락하는 흐름이 지표로 몇 차례 더 확인될 때까지 연준의 긴축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설명이다. 특히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전에 8월 물가지표가 발표되는데, 그 결과에 따라 금리인상 경로도 달라질 수 있다. 김 연구원은 “9월 FOMC에서 0.5%p와 0.75%p 금리인상 가능성을 모두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손민균

◇ 한은 “유가 변동 없으면 8월 기준금리 0.25%p 인상”

앞서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물가 피크아웃(peak out·정점 통과) 시점이 미국보다 2~3개월 정도 늦어질 것이라면서 9~10월쯤이 유력하다고 봤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로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한국은행은 이같은 6%대 고물가 흐름이 최소 10월까지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행보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이달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 압력이 존재하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수준으로 안정된 점을 감안하면 8월까지 두 달 연속 빅스텝을 단행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국제유가 등 해외 요인에 변화가 없다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는 상승세가 2~3개월 지속된 뒤 조금씩 안정될 것으로 본다”며 “물가와 성장 흐름이 기존 전망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기준금리를 0.25%p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