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강타한 경기 침체 공포에 유로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원·달러 환율이 장중 1310원을 돌파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미국 달러화로 자금이 몰렸고, 달러화 가치는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6원 오른 1306.3원에 마감했다. 이날 8.2원 오른 1308.5원에 출발한 환율은 장 초반 1311.5원까지 치솟으면서 연고점을 경신했다. 이는 장중 고가 기준으로 지난 2009년 7월 13일(1315원) 이후 약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이날 환율을 밀어올렸다. 특히 전날부터 유로존의 경기 침체 우려 고조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급락한 점이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미쳤다. 5일(현지시각) 유로화의 달러화 대비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 이상 내린 1.0281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02년 12월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다.

유로존의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 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경제 하방 압력이 커진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달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6%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41.9% 치솟은 영향이 컸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유로존에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겠다고 밝히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뛰었다.

CNBC는 “유로존의 7월 센틱스경제지수가 2020년 5월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냈는데 이는 경기 침체가 불가피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센틱스지수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지수다. 유로존의 7월 센틱스지수는 -26.4를 기록했는데, 이는 6월(-15.8)은 물론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전망치(-19.9)보다 낮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만큼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유로화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연준이 올 들어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p), 0.5%p, 0.75%p씩 인상하는 동안 ECB는 0% 수준에서 금리를 동결해왔다. ECB가 이달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지만, 0.25%포인트(p) 인상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에너지 숨통’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노르웨이 정유업계 파업, 스칸디나비아 항공 파산보호 신청 소식이 시장 심리에 악재로 작용했다”며 “현재 경기 침체 우려가 시장 심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뉴스 하나에도 달러 매수세가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밤사이 미국에서는 경기 침체의 신호로 여겨지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또 발생했다. 올 들어 세 번째다. 5일(현지시각) 미국 채권시장에서 2년물 국채금리는 2.792%로 10년물 국채금리 2.789%를 장중 한때 넘어섰다.

잇따른 경기 침체 경고음에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달러화는 초강세를 보였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06선을 돌파했다. 달러인덱스가 106을 넘어선 것은 2002년 11월 27일(106.6) 이후 약 20년 만이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 재료가 부족한 가운데 이달 연준의 금리인상이 예고된 상황인 데다 주요국을 중심으로 경기 침체 신호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도 1350원을 향해 상승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 연준의 긴축 행보가 완화되거나, 물가 상승률이 꺾이거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이상 원화가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낮다”며 “여기에 경기 침체 가능성이 부각되고, 외국인의 국내 증시 순매도가 지속되는 등 수급에 부정적인 요인까지 맞물리고 있어 원·달러 환율도 당분간 1300원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