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소 추상적인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요건을 구체화해 예타 제도의 정치적 활용을 차단하고, 경제성 검증과 재정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예타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린다. 이와 동시에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예타 조사 기간을 3개월가량 줄여 사업의 적기 추진을 돕는다는 방침이다.

6월 30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2022년 제2차 재정사업평가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 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는 30일 오후 최상대 2차관 주재로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2년 제2차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예타 제도 개편 방향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예타 제도 개편의 기본 방향에 대해 기재부는 “엄격한 제도 운영으로 예산 낭비를 방지하는 ‘재정의 문지기(Gate-Keeper)’로서 예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며 “동시에 경제·사회 환경 변화에 대응해 예타 제도를 신속·유연하게 운영하면서 평가 기준·방법 내실화 등을 통해 평가의 정확성, 평가 과정·결과에 대한 사업 부처의 자율성·수용성을 제고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회의에서 정부는 예타 제도 3대 개편 방향으로 ▲엄격한 예타 제도 운영 ▲예타의 신속성・유연성 제고 ▲예타 평가 내실화 등을 제시했다.

우선 정부는 재정의 효율성 제고와 재정규율 강화를 위해 예타 제도를 엄격하게 운영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예타 면제 요건을 구체화해 불필요한 면제 사례를 없앤다는 전략이다. 가령 현행 면제 요건이 ‘국가 안보와 관계되거나 보안이 필요한 국방 관련 사업’이라면 앞으로는 ‘민간 재화·용역과 경합하거나 수익자 부담 원칙에 의해 사용료가 부과되는 비전력화 부문 사업은 면제 대상에서 제외’와 같은 식으로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다.

면제된 사업에 대해서는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확대 실시해 관리·감독을 강화한다. 또 대규모 복지 사업에 관한 예타 평가 기준을 강화하고, 예타를 통과한 복지 사업이라도 별도의 사후평가·검증을 한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방향 설정은 지난 5년간 100조원 넘는 예타 면제를 남발한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중독’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문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면제된 예타 사업을 액수로 환산하면 105조9302억원에 달한다. 예타 사업이 도입된 이래 면제액이 100조원을 넘은 건 문 정권이 처음이었다. 문 정부 예타 면제 규모는 직전 두 정부인 이명박 정부(61조1000억원)와 박근혜 정부(25조원)의 예타 면제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또 기재부는 예타의 신속성・유연성 제고와 관련해서는 긴급 정책 수요 대응과 사업 적기 추진을 위해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통상적인 예타보다 조사 기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신속 예타 절차를 도입하면 현행 예타운용지침상 조사 기간인 9개월(철도 12개월)이 6개월(철도 9개월)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과 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에서 1000억원(국비 300억→5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끝으로 예타 평가 내실화는 그간 방법론의 한계 등으로 경제성(B/C) 분석에 반영하지 못했던 안전·환경, 삶의 질 등 다양한 편익을 적극 발굴해 반영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통행 쾌적성 향상 편익, 수질오염 개선 편익 등을 예로 들었다. 평가 과정에서는 사업별 정책 목적과 특성에 맞게 부처가 제시하는 사업 특화 항목을 정책성 분석 평가 항목으로 선정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향후 세부 개편 과제에 대한 심층 논의 등을 위해 전문가 간담회·토론회, 부처·지자체 회의 등 예타 제도 개편 관련 추가 의견을 받을 것”이라며 “8월 말까지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