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의 경제 협력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지난 5월 정식 출범한 가운데, 우리나라가 이르면 8월 중 미국과 첫 번째 협상을 개시한다. 미국이 11월 중간선거 전에 IPEF 참여국간 논의 구체화를 강력히 희망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고위급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27일 정부에 따르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범정부 IPEF 협상단은 올해 여름이 지나가기 전 미국과 IPEF 1차 협상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IPEF가 이제 막 출범해 각국이 의제와 대응 전략을 한창 수립하고 있다”며 “협상을 논하기엔 이른 감이 있는 게 사실인데, IPEF를 주도하는 미국이 여름내 협상 시작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정부가 IPEF 참여국간 협상에 속도를 내는 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다. 이달 23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미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6%로 나타났다. 이는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최저치인 33%에 근접한 수준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작년 8월 이후 지금까지 50%를 밑돌고 있다.

미국을 덮친 최악의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 확산이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는 민주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과 하원 중 최소한 한 곳은 공화당에 다수당 지위를 빼앗길 수 있다고 관측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정부로선 국내 부정 여론을 환기할 이슈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 민간 분야 통상 전문가는 “IPEF 참여국을 보면 인구는 25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32.3%를 차지하고, 국내총생산(GDP) 총합은 34조6000만달러로 글로벌 GDP의 40.9%에 달한다”며 “여기에 중국 견제 효과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리더십이 흔들리는 미국으로선 중간선거 전에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5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IPEF 출범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이 작년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통해 처음 공개한 IPEF는 인도·태평양 역내 국가 간 포용적이고 유연한 경제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일종의 경제안보 협력체다. 기존의 전통적 자유무역협정(FTA)이 시장 개방에 주력했다면 IPEF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공급망·청정에너지 등 신통상 의제에 대한 역내 포괄적 경제 협력을 추구한다.

지난달 23일 공식 출범한 IPEF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총 14개국이 참여한다. IPEF는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 ▲공급망 안정성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화 ▲조세·반부패 등 총 4개 분야를 다룬다. IPEF 참여국은 이 4개 분야에 다 참여해도 되고, 한 가지 의제에만 참여할 수도 있다.

한국은 IPEF 출범 주도국 중 하나인 만큼 4개 분야에 모두 참여하는 걸 전제로 협상을 준비 중이다. 정부는 대외 장관급 협의는 안덕근 본부장(수석대표)이, 고위급 협의는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이 총괄한다는 방침이다. 4대 분야별로 보면 무역은 산업부, 공급망은 산업부·외교부·기획재정부, 청정에너지‧탈탄소‧인프라는 산업부·외교부, 조세‧반부패는 산업부·기재부가 각각 분과장을 맡는다.

다만 일부 국가가 4개 분야 중 어느 의제에 참여할지를 두고 고심이 길어지고 있어 미국의 바람대로 여름 내 협상 개시가 힘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IPEF 참여국 가운데 일부 개발도상국이 4번째 분야인 조세·반부패 참여 여부에 관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IPEF가 다자간 협상을 전제로 하는 만큼 참여국의 준비 속도에 따라 협상 개시 시점이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