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가파른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21일 말했다.

다만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big step)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긴 어렵고 경제 상황과 환율, 가계 이자부담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외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빅스텝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물가안정 목표 운영 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이 총재는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오전 열린 물가안정목표 상황 설명회에서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물가, 경기, 금융안정, 외환시장 상황 등 향후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데이터 디펜던트(data-dependent)하게, 유연하게 수행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은 최근의 엄중한 물가 상황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당행의 설립목적인 물가안정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자료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물가 수준인 연 4.7%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달 한국은행이 제시한 전망치인 4.5%보다 높은 데다, 정부가 최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제시한 4.7%를 상회하는 수치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달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대응해 정책금리를 한 번에 0.75%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데다, 국제유가도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은 점을 들어 우리나라 물가 상방 압력도 커졌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기준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국내 상황은 크게 변한 것이 없지만 새로운 해외 요인이 등장하면서 물가 여건의 변화가 있었다”며 “미국의 인플레이션 정점 기대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고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제한 등으로 수급차질 우려가 커짐에 따라 국제유가가 6월 들어 평균 120달러 내외로 크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8.6%까지 치솟았다.

이 총재는 “국내외 물가상승 압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면서 물가 상승세가 꺾일 때까지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총재는 우리나라의 6월 물가상승률이 5% 후반대를 기록하거나 6%를 넘어설 경우 한국은행이 빅스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는 “빅스텝 여부는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금리인상의) 양과 속도는 새로운 데이터가 나오면 금통위원들과 적절히 판단해서 결정하겠다”며 “지금은 시장이 FOMC 결정 이후 새로운 정보에 적응하는 시간이고, 다음 금통위까지 3주 정도 남았기 때문에 그 사이 변화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에 근접한 수준까지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 대해서는 “환율은 다른 국가의 화폐와 같이 움직이는지 보고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면 개입할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는 “환율 상승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 우리만 따로 움직이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환율은 미국을 보고 결정해야 하며, 금리와 환율의 관계, 성장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조합을 어떻게 가져갈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가 높아졌다는 진단이 반드시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침체)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 성장률이 몇 프로(%)가 되면 침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며 “5월 금통위 상황에 비해 물가는 올라가는 쪽으로 위험이 높아졌고, 성장률은 미국이 금리를 빨리 올리면서 미국 경기도 빠르게 나빠질 가능성이 있고, 중국도 나빠지고 있어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