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현지시각) 미국 일리노이주(州) 북동부 최대 도시 시카고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채나혼의 ‘쏜톤’ 주유소. 연료 주입을 위해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 모습이 국내 여느 주유소와 다를 바 없었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주유 금액이 올라가는 작은 모니터를 주시하며 스트레칭을 하는 풍경마저 한국과 비슷했다.

주유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이 주유소와 한국 주유소의 차이점이 보였다. 보통 우리나라 주유기는 휘발유 또는 경유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식인데, 이곳 주유기에는 총 5개의 버튼이 달려 있었다. 1갤런당 요금도 각 버튼이 모두 달랐다.

“버튼마다 바이오 에탄올 함유량이 다르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가령 바이오 에탄올 비율이 가장 높은 버튼은 ‘E85′인데, 휘발유 15%에 바이오 에탄올 85%가 섞였다는 뜻이죠. 에탄올 비율이 높을수록 갤런당 가격은 내려갑니다.”

미국 주유소 체인 쏜톤의 빌리 얀센 매니저가 승용차에 E85(바이오 에탄올 85% 함유) 연료를 주유하고 있다. / 전준범 기자

현장 안내를 맡은 빌리 얀센 쏜톤 매니저가 직접 주유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E85 버튼을 누른 얀센 매니저가 미국 GM의 쉐보레 브랜드 승용차 ‘임팔라’에 주유기를 꽂자 모니터 속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날 E85의 1갤런당 요금은 4.72달러. 한국 돈으로 치면 약 5924원(5월 27일 기준)이었다. 30초 정도 흐른 뒤 모니터 숫자가 달리기를 멈췄다. 임팔라 배를 가득 채운 비용은 총 39.99달러(약 5만167원)였다.

바이오 에탄올의 가격 경쟁력을 비교하기 위해 같은 조건의 차량에 옥탄가가 92인 E10(바이오 에탄올 10% 함유) 연료를 주입했다. 이 연료의 1갤런당 요금은 5.82달러(약 7304원). 차량에 가득 채웠을 때 총비용은 49.31달러(약 6만1495원)로, E85를 넣었을 때보다 9.32달러(약 1만1701원) 더 비쌌다.

E10 연료 가운데 미국 내 소비량이 가장 많은 옥탄가 87 휘발유의 경우에는 1갤런당 5.12달러(약 6428원), 승용차에 가득 주유했을 땐 43.38달러(약 5만4464원)로 나타났다. 옥탄가는 휘발유가 연소할 때 이상폭발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통상 옥탄가가 높을수록 고급 휘발유로 분류된다.

가장 왼쪽 버튼이 E85 연료다. 왼쪽에서 두 번째는 E15, 나머지 3개는 E10이다. E10 연료 3개의 갤런당 가격이 상이한 건 옥탄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 전준범 기자

바이오 에탄올을 섞은 휘발유와 100% 순수 휘발유의 가격 차이도 궁금했다. 하지만 얀센 매니저는 “이곳에서는 순수 휘발유를 취급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따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은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바이오 에탄올을 혼합하는 내용이 담긴 재생 연료 의무화 정책을 도입했다. 1·2차 석유 파동 과정에서 드러난 ‘중동에 대한 과도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였다. 그 결과 현재 미국 내 주유소의 98%가 바이오 에탄올을 섞은 휘발유를 판매하고 있다. 얀센 매니저가 한국 취재진의 ‘100% 휘발유’ 발언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다.

주유기 손잡이에 바이오 에탄올 함유량 정보(E85)가 표시돼 있다. / 전준범 기자

바이오 에탄올의 가격 경쟁력은 글로벌 경제를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최근 들어 더 주목받고 있다. 올해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8.5%로, 1981년 12월 이후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4월 상승률도 8.3%로 2개월 연속 8%대를 이어갔다. 이달 4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p)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바이오 에탄올의 장점을 자국 인플레이션 억제에 활용하려고 한다. 올해 4월 바이든 대통령은 E15(바이오 에탄올 15% 함유) 연료의 여름 판매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미국은 무더운 여름에 E15를 사용하면 스모그 현상 빈도를 늘릴 수 있다는 일부 주장을 고려해 여름 판매를 금지해왔다. 백악관은 E15 연료의 여름 판매 허용으로 1갤런당 약 10센트의 유가 상승 억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10일(현지시각) 백악관 사우스코트 오디토리엄에서 정부의 물가 상승 대책을 소개하고 있다. / AP 연합뉴스

바이오 에탄올의 장점은 가격 경쟁력에만 있는 게 아니다. 기존 화석연료보다 친환경 연료라는 점도 바이오 에탄올의 무기다. 바이오 에탄올은 옥수수·밀·사탕수수·감자 등 녹말 작물을 발효시켜 차량 등의 연료 첨가제로 사용하는 바이오 연료다. 작물의 식물성 기름을 추출해 만드는 바이오 디젤과는 다른 종류다.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캘리포니아주 대기자원위원회(CARB) 등에 따르면, 바이오 에탄올 연료는 100% 휘발유와 비교해 온실가스를 45% 감축할 수 있다.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 연구팀은 지난 2021년 한국이 휘발유에 바이오 에탄올을 10% 혼합하는 E10 정책을 도입하면 수송 부문에서 연간 310만톤(t)의 탄소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장점을 인정한 미국·유럽연합(EU)·캐나다·브라질 등 전 세계 60여 개 국가가 바이오 에탄올 연료 정책을 도입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많은 한국은 아직 바이오 에탄올 연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에 한국은 2013년 자동차 경유에 바이오 디젤을 의무적(2020년 기준 3.0%)으로 섞도록 했다.

옥수수 에탄올 가공 공정. / 미국곡물협회

바이오 에탄올을 둘러싼 논란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주행 퍼포먼스가 약해진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김학수 미국곡물협회 한국사무소 대표는 “주행 성능에 1~2%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대다수 운전자는 일상 운전에서 체감하기 힘든 수치”라고 했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겸임교수도 “주행 성능에서 연료가 물론 중요하지만, 에어컨·히터 가동 여부나 운전자의 운전 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옥수수·밀·사탕수수 등의 연료 사용이 식용 자원을 줄여 곡물 가격 인상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미국이 재생 연료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2000년대 초에 곡물 가격이 오른 경험이 있어서다. 스테펜 뮬러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 교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뮬러 교수는 “작물 재배법의 발달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늘었고, 에탄올 생산 기술도 고도화했기 때문”이라며 “에탄올 생산과 식량 가격 변동 추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비례해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