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가 외식, 가공식품, 석유류 등 생필품 위주로 급등하면서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많이 올라 서민들의 삶에 부담을 지우는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물가가 가장 많이 오른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한 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지막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물가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가계∙기업∙정부가 3인4각처럼 함께 힘 모으자”고 발언해, 빈축을 사고 있다.

가파른 물가 상승 국면에서 피해를 입는 쪽인 가계에다 물가 안정 노력을 하자는 취지의 말을 하는 게 합당하냐는 것이다. 홍 부총리가 경제 주체들의 역할을 바라보는 인식부터 어긋나 있으니, 정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가 물가 상승 국면에 무엇을 할 수 있나, 소고기 덜 먹고 차 운전 덜하고, 월급 올려 달라는 이야기 하지 말라는 거냐”는 비판이 나온다. 석유류, 외식, 먹거리 가격 등 생필품 가격이 올라 고통받고 있는 가계에 정부가 책임을 떠밀고 있다는 것이다.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뉴스1

◇4월 소비자물가, 전년比 4.8% 상승

통계청이 3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4.8% 올라 13년 6개월만에 가장 높았다. 2008년 이후 최대 물가 상승폭으로, 대외 불확실성 요인이 지속될 경우 향후 5% 상승률을 나타낼 우려도 있다. 당초 통계청은 지난해 2분기에는 물가 상승률이 3%대였기 때문에 기저효과가 있어, 2분기부터는 물가 상승률이 안정세를 나타낼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4월에 들어서자마자 보란듯이 5%에 육박하는 물가 상승률을 나타냈고 기저 효과도 소용이 없었다. 지난해 3%대 물가 상승률을 기반으로 했음에도 5%를 바라보는 물가 대란이 일어난 것이다.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6% 상승했는데, 2011년 12월의 3.6% 이후 약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3.1%를 기록하며 전월(2.9%)을 웃돌았다. 이는 2009년 5월의 3.1% 이후 최고치다. 전체 460개 품목 중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높아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1개 품목으로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7% 올랐다. 이는 2008년 8월의 6.6%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세부 품목별로 보면, 수입쇠고기(28.8%), 돼지고기(5.5%), 포도(23%), 국산쇠고기(3.4%), 닭고기(16.6%), 참외(17.2%) 등의 가격이 올랐다. 휘발유(28.5%), 경유(42.4%), 등유(55.4%), 자동차용LPG(29.3%), 빵(9.1%), 소파(30.3%) 등 공업제품의 가격도 만만찮게 상승했다. 전기료(11%), 도시가스(2.9%), 상수도료(4.1%) 등과 생선회(외식)(10.9%), 보험서비스료(10.3%), 치킨(9%) 가격도 상승했다.

향후에도 물가 상승률이 낮아질 조짐은 없다는 게 통계청의 전망이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를 찍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운선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기상 조건 악화, 공급 부족, 곡물 가격 상승, 공급망 차질, 원재료 가격 상승 등 대외 불안 요인이 촉발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요인까지 겹쳤다”며 “석유류 등 공업제품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년 4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인플레가 가계·기업·정부 연대 책임? 책임 떠넘기기”

이 와중에 홍 부총리는 자신이 주재하는 마지막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가계가 물가 상승 국면을 헤쳐나가기 위해 정부, 기업과 함께 노력해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기에 가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홍 부총리의 발언은 최근의 인플레이션에 대해 가계, 기업, 정부의 연대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책임 떠넘기기로 보인다”며 “현 상황에서는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올리고 정부는 재정 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영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데,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한은의 긴축적 통화 정책의 효과를 떨어트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계와 기업, 정부는 경제의 3축이다. 이 가운데 가계가 담당하는 경제활동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받은 소득으로 소비를 해 생계를 유지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기업은 서비스, 재화를 생산해 물건을 팔고 가계에 임금을 주고 정부에 세금을 내고, 정부는 기업과 가계에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임금을 준다.

물가 상승기에 소비의 주체인 가계가 할 수 있는 노력이 무엇인지 의문스럽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널뛰고, 정부는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며 수차례의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 시장에 돈을 풀어 물가를 자극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억눌려 있던 소비가 회복세를 나타내는 것도 외식 등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정부가 가계에 요청하는 ‘힘 모으기’의 일환이 소비를 멈춰 달라는 것이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고물가 기조 속에서 근로자들이 월급 인상을 요구하면서 조만간 국내 노동시장의 임금 인상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가계에 물가 안정을 요구하는 홍 부총리의 발언의 귀결점이 ‘월급을 올려 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3%를 돌파하면서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물가 상승→임금 인상→추가 물가 상승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