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인 4.8%를 기록하면서 한국은행이 이달 26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명분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한국은행은 물가 흐름과 미국의 긴축 강도를 고려해 5월 금리인상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는데, 현 시점에서는 2가지 요인 모두 추가 금리인상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은 5%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뛰었고, 미국 중앙은행(Fed)은 정책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예고한 상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도 지난달 “성장과 물가가 모두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현재까지는 물가가 더 걱정된다”며 추가 금리인상을 시사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25일 중구 세종대로 한국은행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단 상견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4월 소비자물가 4.8% 상승…한은 “당분간 4%대 물가 지속”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다. 이는 2008년 10월(4.8%)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다 공급망 차질 심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 회복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4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인 2%를 넘어섰고, 지난해 10월 3%대로 올라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이 치솟기 시작한 올해 3월에는 4%를 돌파했다.

물가는 당분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인한 수요 회복 등에 힘입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4%대를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실제 물가지표와 상호작용하면서 추가로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더 높아지지 않도록 금리인상 등의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3.1%로 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래픽=손민균

◇ 물가·美긴축에 금리인상 압박 커진 한은

물가 상황만 놓고 보면 한국은행이 이달 추가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한국은행은 치솟는 물가를 잡고, 가계부채 급증으로 누적된 금융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기준금리를 총 4차례 인상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1.5%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인기는 없더라도 선제적으로 금리 시그널(신호)을 줘서 물가 상승 기대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행보 역시 ‘5월 금리인상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창용 총재도 “5월 기준금리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수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연준은 오는 3~4일(현지시각) 열리는 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0.5%p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6~7월 FOMC에서도 빅스텝 또는 자이언트스텝(0.75%p 금리인상)을 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자이언트스텝이 현실화될 경우 조만간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면서 외국인 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2개월 연속 인상시 경기 둔화 우려도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중국의 봉쇄 등 대내외 악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기준금리를 연속으로 올리면 경제 성장률이 둔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통위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체계를 도입한 2008년 3월 이후 2개월 연속 금리를 인상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5월 금리결정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은 과거 이성태 총재 시절 2007년 7월 12일(4.50%→4.75%), 8월 9일(4.75%→5.00%) 2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바 있지만, 당시 한국은행은 콜금리 목표제를 운영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