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5%로 0.25%포인트(p) 인상했다. 4%대로 치솟은 물가를 억제하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공격적인 긴축 행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격 인상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계부채가 1862조원 수준으로 불어나는 등 금융불균형이 누적된 상황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4일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연 1.5%로 0.25%p 올렸다. 지난 1월(1%→1.25%)에 이어 올해 들어 2번째 금리 인상이다. 이번 금통위는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총재 공백 상태에서 열린 첫 회의로, 순번에 따라 주상영 위원이 금통위 의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주상영 금융통화위원(의장 직무대행)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한국은행

앞서 금통위는 2020년 코로나 확산 이후 1년 3개월 동안 연 0.50%로 유지해온 기준금리를 지난해 8월 0.75%로 0.25%p 올리면서 금리인상 행보를 시작했다. 돈을 빌려 부동산·주식에 투자하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는 등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자 정책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어 지난해 11월(0.75%→1%)과 올해 1월(1%→1.25%) 두 차례 연속 금리를 올리면서 기준금리를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되돌려놓았다. 2월에는 숨 고르기 차원에서 금리를 동결했지만, 최근 빨라진 미국의 긴축 움직임과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두 달 만에 추가 금리 인상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8개월 만에 0.5%에서 1.5%로 1%p 올랐다.

금통위는 총재 공백,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물가 상승세를 억제하고 누적된 금융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통위는 이날 낸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국내 경제가 회복세를 지속하고 물가가 상당 기간 4%대의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앞으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정해 나가겠다”며 “앞으로 성장 회복이 이어지고,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로, 2011년 2월(4.2%) 이후 약 10년 만에 4%대로 올라섰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인 2%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데다, 공급망 차질 문제가 심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도 2.9%까지 올랐다.

그래픽=이은현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문제도 금리인상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862조원 수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인데, 최근 2년간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빨랐다. 이창용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이달 초 “가계부채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금리를 통해서 가계부채 문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달 3년 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연말까지 6회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한 점도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을 서두르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년 만에 최고 수준인 8.5%를 기록하면서 연준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연준이 긴축에 속도를 내면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면서 외국인 자본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도 금리인상으로 보폭을 맞춰야 한다.

이번 기준금리 결정은 대체로 시장 예상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채권시장 전문가 50%만 한은이 4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사상 초유의 총재 공백 상황을 고려해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