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여 년 만에 4%를 넘어서자 차기 윤석열 정부 출범 준비에 한창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의 고민도 깊어졌다. 물가 경고음이 한국은행의 안정 목표치(2%)를 두 배 웃돌 만큼 커진 상태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코로나19 손실 보상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인수위는 국채 발행을 하더라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작은 규모라도 일단 국채를 발행하면 채권 가격은 하락(금리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채 금리 상승의 여파로 대출 금리가 더 오르면 서민의 삶은 고달파진다.

기획재정부는 인수위에서 제시한 지출 구조조정을 비롯해 세계잉여금, 특별기금 조성 등 추가경정예산(추경)에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국가결산 결과 세계잉여금에서는 6조3000억원을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정부는 한국은행이 납부한 1조4000억원 이상의 결산 잉여금 여유분도 추경 재원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월 5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간사단 회의에 참석해 발표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 세계잉여금 23.3조원서 6.3조원 사용 가능

6일 2021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세계잉여금은 23조3000억원이다. 일반회계 세계잉여금 18조원, 특별회계 세계잉여금 5조3000억원으로 각각 구성됐다. 기재부는 결산이 마무리된 만큼 차기 정부가 추진하는 추경 재원 마련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세계잉여금을 전부 추경에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선 일반회계 세계잉여금 18조원 중 지방교부세 6조1000억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5조2000억원을 정산하고 나면 6조7000억원이 남는다. 그리고 남은 돈의 30%인 약 2조원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공적자금 상환기금에 출연한다. 출연하고 남은 잔액의 30%인 1조4000억원은 국가채무 상환에 쓴다. 즉 일반회계 세계잉여금에서 추경 재원으로 쓸 수 있는 돈은 3조3000억원이다.

특별회계 세계잉여금 5조3000억원은 모두 추경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올해 1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이미 2조3000억원을 쓴 상태라 새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원은 3조원으로 줄었다. 결과적으로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에서 뽑아낼 수 있는 추경 재원은 6조3000억원이다.

일러스트=정다운

◇ 한은 결산 잉여금 여유분 1조4000억원, 추경에 활용할 듯

여기에 한국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정부 전망치를 웃돌면서 1조4000억원 넘는 여윳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은행은 작년에 7조863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한국은행은 한은법 제99조에 따라 당기순이익의 30%인 2조3592억원을 법정적립금으로 적립하고, 226억원을 임의적립금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나머지 5조4781억원을 정부에 세입으로 납부했다.

현재 기재부는 한국은행이 납부한 5조4781억원 가운데 1조4000억원 가량을 2차 추경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당초 기재부는 한국은행으로부터 결산 잉여금 4조301억원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올해 예산을 짰다. 그런데 지난해 글로벌 증시 호황에 따른 주식 매매 차익 확대로 한국은행의 당기순이익이 늘었고, 그 덕분에 정부에 들어온 세금도 기재부 전망을 크게 웃돌았다. 정부 관계자는 “5조4781억원에서 4조301억원을 뺀 나머지 약 1조4000억원은 예산으로 잡았던 세외수입이 아니다”라며 “필요시 추경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잉여금에서 쓸 수 있는 6조3000억원과 한국은행 결산 잉여금 여유분 1조4000억원을 합치면 7조7000억원이 된다. 기재부는 이 돈을 토대로 인수위가 주문한 지출 구조조정, 특별기금 조성 등의 후속 작업을 거쳐 손실 보상에 쓰일 재원을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도 부족한 부분은 ‘최후의 보루’인 국채 발행으로 채운다. 정부 관계자는 “국채 발행 규모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최소화할 아이디어를 계속 찾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 4%대 소비자물가에 더 예민해진 국채 발행

정부가 한국은행 결산 잉여금까지 몽땅 살피는 건 10여 년 만에 ‘소비자물가 4%대 시대’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2022년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1%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한 건 4.2%를 기록한 2011년 12월 이후 10년 3개월 만이다. 100달러를 웃도는 국제유가의 영향으로 석유류 등 공업제품 가격이 크게 오른 게 전체 물가 상승세를 이끌었다.

날로 심화하는 인플레이션에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추가 인상 카드를 꺼낼 분위기다. 한국은행은 오는 1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간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4월보다는 5월에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물가 흐름과 미국의 공격적인 긴축 행보 등을 고려해 금리 인상 시점을 1개월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이 점점 힘을 얻는다.

금리가 자꾸 오르면 대출 금리도 덩달아 오른다. 많은 국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중된다는 의미다. 이 흐름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3월 30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구간은 연 4~6.01%로 집계됐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채권 가격은 더 추락(금리 상승)할 수밖에 없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등장도 기재부가 국채 발행을 어떻게든 억제해야 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한 후보자는 이달 3일 총리 지명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전염병 대응을 위한 확장정책이 계속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정성은 정부만이 큰 위기의식과 함께 대응해야 하는 과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