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한국조폐공사 서울사옥에 위치한 금품질인증사업소. 귀금속사업·인증팀 소속 이태성 과장(35)이 대형 금고에서 한 덩어리에 8000여 만원 수준인 1kg 골드바를 꺼내 보여주며 위변조 방지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골드바 후면에 위치한 가로·세로 약 1cm의 정사각형 4방향 잠상(潛像)에는 품질을 인증하는 4가지 그림·문구가 숨겨져있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 방향에서 잠상을 보면 골드바의 순도를 의미하는 ‘9999′라는 숫자가 보인다. 이는 순도가 99.99%라는 의미다. 또 위로는 한글 ‘금’, 아래로는 한자로 ‘금(金)’이 표시된다. 왼쪽으로 보면 금의 원소기호인 ‘Au’가 보인다.

이러한 잠상은 조폐공사의 특허기술이다. 동전과 각종 기념주화를 찍어내는 금형을 만들 때 쌓은 기술들이 골드바에 적용된 것이다. 골드바의 잠상을 찍어내는 특수 압인 금형은 100% 옛 조폐창으로 불리는 경산시의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에서 디자인·생산하고 있다. 중량에 따라 1kg 골드바에는 4방향 잠상이, 500g 이하에는 2방향 잠상 기법이 사용됐다.

최근 원자잿값 상승 등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면서 안전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금투자’가 재조명 받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늘면서 금값이 급등하는 상황이다. 이에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모방 및 위조가 불가능한 잠상 인증을 박힌 조폐공사의 골드바가 인기를 끌고 있다.

◇ 골드바, KRX 금시장 가려면 조폐공사 인증 필수

조폐공사는 2014년 한국거래소(KRX) 금거래소가 오픈하면서 금인증 B2B(기업간 거래) 사업에 진출했다. 우선 조폐공사는 KRX금시장에 공급되는 골드바의 품질을 관리하는 국내 유일의 품질인증기관이다. 골드바 생산업체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1회에 약 50kg씩 입고가 된다. 이후 인증사업소내 중량, 초음파 검사를 통과해야만 품질인증서를 받게 된다.

실제 이날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측정할 수 있는 고정밀 저울에 1000g짜리 골드바를 놓기 전에 분동(分銅·무게의 표준이 되는 추)으로 저울의 상태를 체크했다. 이러한 데이터는 모두 실시간으로 기록으로 남는다. 이후 초음파 장비에 골드바를 넣어 불순물 검사를 진행했다. 골드파에 초음파를 쐈을 때, 발생하는 파동을 통해 불순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은으로 내용물을 채운 뒤 겉 표면에 금으로 도금한 골드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골드바를 장비에 넣자, 8개의 초음파 발생기가 골드바에 밀착하면서 초음파를 쐈다. 모니터에는 순금을 인증하는 파형이 선명하게 보였다. 두 시험을 통과한 골드바에는 품질인증서가 부여된다.

1000g 골드바에 새겨진 4방향 잠상의 모습 /한국조폐공사

또 조폐공사는 골드바 생산업체의 생산공정, 품질관리 등 사업장의 적격성을 평가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시안 검사도 진행하고 있다. 금을 화학물질로 녹여 만든 왕수(王水)를 사용해, ICP(Inductively coupled plasma·유도결합플라즈마)라는 성분검사 장비로 측정한다. 이 장비는 철·납·구리 등과 같은 20개 원소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분석 과정에서 중량이 줄어들 수 있는 금의 감소율을 2%내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골드바 생산업체 입장에서도 손실율이 줄어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인증된 골드바는 KRX 금거래를 위해 모두 한국예탁결제원에 보관된다. 현재 KRX금시장에는 한국조폐공사가 인증한 순도 99.99%의 1kg 및 100g 골드바가 각각 상장돼 있다. 조폐공사가 지난해 인증한 골드바만 10톤 규모로, 지난해 1g당 금시세가 평균 6만6261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금액으로 대략 6600억원 규모다.

이 과장은 “금인증소에는 첨단 장비가 구축돼 있어, 검사와 인증 라벨 발부까지 1시간이 채 소요되지 않는다. 당일 검사 체계를 구축했다”며 “순도는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순도 미달의 ‘저질 금’, ‘가짜 금’ 등으로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만큼 확실한 순도보증이 되는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더불어 투자자가 장기 보유 후 팔아야할 때도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건실한 브랜드 제품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골드바의 불순물을 확인하는 초음파 검사기의 모습. /박성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에 금값 ‘껑충’... 골드바는 ‘포나인’

한국조폐공사는 귀금속 시장의 거래 양성화와 투명성 제고를 위해 2014년부터 자체 골드바 브랜드인 ‘오롯 골드바’ 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오롯(Orodt)’은 스페인어로 ‘금’을 뜻하는 ‘oro’와 우리나라 고어인 ‘오롯이’의 합성어로 조폐공사의 골드바 제품 브랜드다. 지난해 조폐공사 서울사옥 1층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200억원의 골드바가 판매됐다.

오롯 골드바의 인기 비결은 높은 신뢰도다. 조폐공사의 정밀 순도 분석을 통해 중량을 비롯해, 순도까지 인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술표준원의 KS국가표준에서는 순도가 999.9‰인 골드바 제품 표면에만 24K 또는 999.9를 표기할 수 있다. 999.9‰(퍼밀)과 99.99% 금괴는 ‘포나인(Four Nine)’으로, 999‰(퍼밀)와 99.9%는 ‘쓰리나인(Three Nine)’으로 부른다. 한국조폐공사의 ‘오롯 골드바’ 순도는 999.9‰인 ‘포나인’ 제품이다. 불순물이 0.01%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제품 보증서에도 보안기술을 적용했다. ‘수무늬’라는 휴대폰 앱을 통해 보안서의 진위 여부를 구별할 수 있다. 금 같은 현물 자산의 경우, 매각이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다. 또 일반인이 진위 여부나 순도를 판별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조폐공사의 골드바는 인증의 높은 공신력 덕분에 금 매입 시장에서도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에 금 가격이 급격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쟁에 따른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금 가격을 끌어올린 것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물 금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5.90달러(0.8%) 급등한 온스당 1926.3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월 이후 약 1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올해는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한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금값이 크게 반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금 가격 12개월 전망치를 온스당 2000달러에서 2150달러로 높였다.

조폐공사 서울사옥과 오프라인 골드바 판매점 /박성우 기자

한편, 올해로 창립 71주년을 맞은 조폐공사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조폐공사의 기본 업무는 지폐나 동전 등 화폐 생산과 상품권 등 유가증권과 여권 제작 등이다. 문제는 온라인 쇼핑몰 확산과 핀테크 산업의 정착 등으로 인해, 실물 화폐의 수요는 매년 급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조폐공사는 지폐 제조과정에서 축적한 위변조방지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인증사업에 진출했고, 2011년 이후 화폐생산 매출이 전체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이 30% 아래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