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오는 6월까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송금 기능을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에 담는 실험을 추진한다. 지난달 CBDC 제조, 발행, 유통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모의실험 환경을 구축하는 1단계 사업을 마쳤고, 앞으로 6개월간 모바일 기기를 통한 오프라인 결제, 국가간 송금, 디지털자산 구매 등 기능실험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24일 한국은행은 지난달 ‘중앙은행 CBDC 모의실험 연구사업’ 1단계를 완료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현재 2단계 사업을 수행 중이다. CBDC란 블록체인(분산저장) 기술을 기반으로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다. 지난해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암호자산(가상화폐) 투기 열풍이 불면서 한국은행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CBDC 연구와 도입 논의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민간에서 발행하는 암호자산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동안 중앙은행이 독점해온 화폐 발권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중앙은행들도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 갤럭시S21 울트라. /삼성전자

이번 모의실험은 CBDC 도입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한국은행은 먼저 가상 환경에서 CBDC가 화폐로서 제기능을 하는지 실험한 뒤 상용화 여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와 손잡고 지난해 8월부터 모의실험을 2단계로 구분해 추진했는데, 지난달 기준 1단계를 마친 상태다.

1단계 사업에서는 CBDC 모의실험 환경을 조성하고 CBDC 기본 업무에 필요한 IT 시스템을 구현했다. 한국은행은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CBDC의 기본 기능인 제조, 발행, 유통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CBDC 시스템의 경우 중앙은행이 제조·발행하고 참가기관이 이용자에게 유통시키는 혼합형 방식으로 구축했다. 중앙은행이 개인에 직접 CBDC를 공급하는 ‘직접형’이 아닌 금융기관을 통해 공급하는 ‘혼합형’을 선택했는데,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현재 금융시스템에 큰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을 통해 현금을 공급하는 현 방식과 비슷한 유통 구조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CBDC 모의실험 1단계 구현 결과 / 한국은행

시스템은 크게 ①제조·폐기 ②발권 ③유통 ④모바일 앱 ⑤원장관리로 나뉜다. CBDC의 제조·폐기와 발행·환수는 한국은행이, 유통은 참가기관이 담당한다. 이용자는 모바일 앱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CBDC를 다른 이용자에게 송금할 수 있게 된다는 구상이다. 유희준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디지털화폐기술반장은 “앞으로 기능실험에서는 삼성전자 갤럭시 폰에 CBDC를 담는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장관리시스템은 이더리움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여타 상용 블록체인 플랫폼과 무관하게 한국은행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허가형 분산원장 네트워크를 구성했다고 한국은행은 설명했다. 한국은행과 5개 참가기관이 참여하는 것으로 가정했고, 분산원장에 기재되는 CBDC 거래의 개인정보는 권한이 있는 기관만 확인 가능하도록 기밀성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CBDC 제조, 발행, 유통, 환수, 폐기 등 업무는 한국은행과 참가기관, 이용자가 소지한 전자지갑을 통해 이뤄진다.

CBDC 업무 흐름 및 참여기관·이용자별 전자지갑 현황 / 한국은행

한국은행은 오는 6월까지 진행하는 2단계 사업에서 인터넷 통신망이 단절된 상태에서의 송금과 대금결제(오프라인 결제), 디지털자산 거래, 국가간 송금 등 CBDC 추가 기능을 구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개인정보보호 강화기술, 분산원장 처리성능 확장기술 등의 적용 가능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CBDC 이용자의 모바일 기기가 인터넷 통신망에 연결되지 않은 환경에서 근거리무선통신(NFC) 등 해당 기기에 탑재된 자체 통신 기능을 통해 거래가 가능하도록 구현하기로 했다.

또 다른 분산원장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NFT(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 등 디지털예술품, 저작권 등을 CBDC로 거래할 수 있도록 관련 기능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종 분산원장과 연계해 토큰화된 자산의 소유권과 대금의 동시결제에 CBDC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세계 최대 NFT 거래소 '오픈씨'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작품들. /웹사이트 캡처

이밖에 다른 국가의 CBDC 시스템과의 연계를 통해 국가간 송금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프로토타입을 개발 중이다. 각국 중개기관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양국의 CBDC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외환을 송금한다는 구상이다.

유희준 반장은 “2단계 사업이 종료되는 6월 이후에는 가상환경에 조성된 CBDC 모의실험 환경을 실제 서비스 환경과 유사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금융기관 등과 협력해 활용성 실험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오는 1분기(1~3월) 활용성 실험에 참여할 금융기관을 선정한 뒤 협의를 통해 연계 실험 세부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