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세수입이 2021년 본예산 편성 당시 세수 추계에 비해 60조원 이상 더 걷힌 ‘초과세수’로 인해 기획재정부의 예측 실패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국회예산정책처와 조세재정연구원의 세수 추계도 예측에 실패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국내에서 세수 추계를 3대 기관의 전망에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예산정책처나 조세재정연구원에 대한 지적은 없이, 오직 기재부에만 비난의 화살을 쏟아붓는 상황이다. 추가경정예산(추경)의 재원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초과세수 오차로 쓸 수 있는 돈을 쓰지 못했다는 ‘불만 표시’로 풀이된다. 여당 일부에서는 기재부가 일부러 과소추계하는 갑질을 했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정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부동산 관련 세수 급증 등으로 세수 추계를 완벽히 한다는 것은 ‘신(神)의 영역’이라는 반응이다. 이러한 배경에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세제실의 대수술을 예고했다. 이에 기재부 안팎에서는 그간 세수 추계를 담은 예산 편성안을 확정하는 최종 결재자인 홍 부총리가 청와대와 정치권의 책임론에 직원들을 희생시키는 ‘꼬리자르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박완주 정책위의장(오른쪽) /연합뉴스

◇ 국회예산정책처 세수 전망도 ‘오차’... 조세재정연구원은 공개 불가

23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 조세재정연구원 등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020년 10월 ‘총수입 예산안 전망’을 통해, 다음 년도인 2021년 국세수입이 284조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기재부도 2021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국세수입이 282조8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봤다. 약 1조9000억원의 차이가 있지만, 사실상 비슷한 수준으로 세수를 전망한 셈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7월 2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세수 전망을 31조5000억원 늘린 314조3000억원으로 수정했다. 같은 기간 예산정책처도 ‘추경 분석보고서’를 통해 국세수입 전망을 318조2000억원으로 상향했다.

당시 예산정책처는 소득세 세수가 99조4743억원, 법인세 65조5465억원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누적 기준 소득세는 106조6000억원, 법인세는 68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2월 한 달을 남겨둔 상태이지만, 이미 11월 세수 실적이 전망치를 뛰어 넘은 것이다.

조세재정연구원 세수 추계 그래픽 /보고서 캡처

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향후 코로나19의 재확산 등으로 하반기 소비·투자심리 위축 및 대외무역 둔화 등이 발생할 경우, 소득세·법인세·소비세수의 감소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수출 호조 등으로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집값도 지속적으로 급등했다.

이후 예산정책처는 작년 10월 ‘2022년 총수입 예산안 전망’에서, 세수 증가에 따라, 2021년 연간 세수 전망치를 323조원으로 1조8000억원을 상향했지만, 예산정책처의 추계는 또 틀렸다.

기재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2021년 11월)’을 보면, 지난해 1~11월 국세수입은 323조40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아직 12월 국세수입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2020년 12월 세수가 17조7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연간 세수는 341조~342조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우선 기재부는 2차 추경 당시 발표한 세수 전망(314조3000억원)에 비해 27조~28조원의 오차가 발생했다. 또 국회예산정책처의 세수 전망(323조원)과 비교해도 18조~19조원의 오차가 있는 셈이다.

◇”세수 추계 오류, 기관 탓보다 불확실성 영향... 정치적 희생양 된 기재부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세수 추계 오차에 대한 화살이 기재부에게만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처나 조세재정연구원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다.

조세재정연구원의 경우, 세수 전망 추계를 아예 외부에 공개 조차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세재정연구원도 지난해 국세수입 전망을 기재부와 비슷한 수준에서 전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국내에서 세수 추계를 하고 있는 ‘3대 기관’이 세수 예측에 실패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조세재정연구원도 전망치를 내부적으로 갖고 있는데, 작년 7~8월 2차 추경 과정에서 세수 추계를 했다”며 “기재부의 숫자와 비슷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전경 /뉴시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세수추계 전망치 자료를 요구하자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기재부와 세수 추계를 함께하는 내부 기관으로서, 세수 추계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최근 기재부의 세수 추계 오류에 비난이 쏟아지자, 나머지 세수 추계 기관들은 입장을 밝히기 꺼려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비슷한 세수 추계 모델을 활용해 계산을 하는 만큼 전망치가 3대 기관이 모두 비슷할 수 밖에 없다”며 “3대 기관의 전망치가 모두 틀렸다는 것은 세수 추계 오차가 산정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라는 특수성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증거다. 누구라도 정확하게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기관 문제 아닌, 코로나·집값 영향... “쇄신 전에 지원방안부터 내놔야”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집값을 잡겠다며 세제를 규제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너무 많은 세제 개편이 이뤄져, 세수를 추계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지적한다. 실제 세무업계에서는 “너무 복잡해서 양도세는 세무사도 계산할 수 없다”는 ‘양포(양도세 포기 세무사)’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또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 급등 등도 세수 추계가 어려웠던 점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기재부 세제실 등 세수 추계 기관의 보수적인 세수 추계가 재정당국을 역할에 충실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초과 세수에 대는 4월 결산을 통해 세계잉여금으로 이전되며, 국가채무를 갚는 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체 검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안팎에서는 “세수 관련 총괄 책임자는 홍 부총리 자신인데, 아래 실무자들을 문책하며 꼬리 자르기에 나선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그간 ‘기재부 해체’ 등 기재부를 비판해오던 여당이 선거에 기재부를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재부 출신 한 인사는 “3대 기관의 전망치가 모두 틀렸고 청와대 등과 소통이 미흡했다는 점은 있지만, 세수 추계가 틀렸다고 쇄신, 조직수술을 운운하는 홍 부총리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산실은 KDI 등 외부 브레인 기관을 두고 있지만, 세제실은 그에 비해 도움을 받을 뚜렷한 기관이 없다”면서 “홍 부총리가 세제실의 쇄신을 얘기할 거면, 그간 부족하고 지원하지 못한 부분을 채워줄 지원방안을 함께 검토했어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