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25%로 인상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 데다, 집값이 뛰고 가계부채가 1850조원 수준으로 불어나는 등 금융불균형이 누적된 상황을 감안해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르면 오는 3월에 정책금리를 올리고, 연내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양적긴축(QT)에 나서겠다고 시사하는 등 긴축 행보를 서두르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4일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에서 연 1.25%로 0.25%포인트(p) 올리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0.75%→1%)에 이은 연속 금리 인상이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직전 수준을 회복하게 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앞서 금통위는 2020년 3월 코로나 확산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당시 연 1.25%였던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인하하는 ‘빅 컷’을 단행했다. 그해 5월에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5%로 낮춘 뒤 14개월 연속 0%대 금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저금리에 돈을 빌려 부동산·주식에 투자하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금통위는 지난해 8월 기준금리를 연 0.75%로 올리면서 금리인상 행보를 시작했다. 이어 11월에 기준금리를 연 1%로 추가 인상하면서 ‘제로금리 시대’가 끝났다. 당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미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금리 수준은 여전히 완화적”이라면서 올해 1~2월 중 추가 금리인상을 시사했다.

이번에도 금통위는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하고 가계부채 급증으로 누적된 금융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라는 변수에도 한국 경제가 올해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란 평가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금통위는 “코로나19 관련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으나 국내 경제가 양호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앞으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2.5%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인 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해 4월 이후 7개월 연속 2%를 넘어선 물가상승률은 10월(3.2%)부터 3%대로 치솟았다. 새해 들어서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하고, 코로나 재확산으로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하는 등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어 한국은행도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주열 총재도 지난달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고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래픽=이은현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는 지난해 9월말 기준 약 1845조원 수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금리 상승에 힘입어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가계대출 증가 속도는 이전보다 둔화됐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한 주택매매와 전세거래 수요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어 적절한 통화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미 연준의 긴축 행보도 금리인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로 40년 만에 최대폭 오르면서 ‘인플레 파이터’로 돌아선 연준의 조기 금리인상 명분이 커졌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빠르면 올해 3월부터 3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는데, 최근 시장에서는 4차례 인상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해졌다.

이번 기준금리 결정은 대체로 시장 예상에 부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채권시장 전문가 57%는 한은이 1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한은이 한 박자 쉬지 않고 2회 연속으로 금리를 올리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금리결정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2회 연속 인상한 것은 2007년 7월과 8월 이후 약 14년 만의 일이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오는 3월 대통령 선거와 한국은행 총재 교체 일정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해석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월 한국은행 금통위는 24일로, 3월 9일 대선을 보름 앞둔 시점이라 1월에 금리인상 결정을 미룰 경우 이로 인한 정책적 이득보다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번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영업자를 포함한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한국은행은 금융기관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 연간 이자부담 증가 규모를 시산한 결과, 기준금리가 0.25%p 오르면 가계 이자부담은 3조2000억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0.5%p 인상 시에는 6조4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8월부터 1월 기준금리가 세 차례, 총 0.75%p 오른 점을 감안하면 가계의 연 이자 부담은 9조6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