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무역은 연간 수출액 6445억4000만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월 단위로 보면 2021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무역수지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20개월 만의 적자 전환이다. 글로벌 공급난 등에 따른 원자재·중간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이 수출을 뛰어넘은 영향이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마저 1200원을 돌파하며 수입 물가를 위협한다. 산유국의 증산 결정에도 국제 유가는 여전히 80달러 부근에 머물러 있다. 지난달에 이어 2022년의 첫 번째 달도 무역수지 적자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선 1월 7일 오전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 인플레가 몰고 온 수입 물가 부담

9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7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5원 오른 1201.5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앞서 6일부터 1200원을 돌파(종가 1201원)했다. 종가 기준으로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선 건 2020년 7월 24일(1201.5원) 이후 17개월 만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조기 금리 인상 우려에 미 국채 금리가 치솟고, 금융 시장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진 것이 달러화 강세로 이어졌다.

흔히 달러 강세는 수출에 유리하다고 알려졌다. 환율이 오른 만큼 수출품의 최종 판매 가격도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투입되는 원자재와 중간재의 수입 의존도가 과거보다 높아진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 공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건 아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70~80년대에는 100원어치를 수출하면 70원 정도 남겼기 때문에 ‘달러 강세=수출 유리’가 틀린 말이 아니었다”며 “지금은 글로벌 공급 네트워크가 고도화하고 수입 중간재 비중이 높아져 수출 부가가치가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가뜩이나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경고음을 울리며 우리나라의 수입 물가 부담을 키우는 상황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율마저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자 통상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긴장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물가·환율·공급망 등 수출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지난달 우리나라의 수입액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37.4%로, 수출액 증가율(18.3%)을 두 배가량 웃돌았다. 이로 인해 한국은 작년 12월에 607억4000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내고도 무역수지는 5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 수출 사상 최고치’라는 신기록에도 새해 1월을 마냥 즐기지 못하는 이유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진열된 맥주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 달러 강세 당분간 지속 전망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조선비즈가 국내 경제 전문가 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는 올해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 상승 추세가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할 것으로 본 전문가도 전체의 80%나 됐다.

미 연준의 관점도 비슷하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이달 5일(현지시각) 공개된 작년 12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경제, 노동시장, 인플레이션 전망 등을 고려할 때 금리를 예상보다 빠르게 올려야 할 수 있다”고 했다. 강력한 긴축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연준은 시중 유동성을 수거하는 ‘양적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도 시사했다. 연준의 긴축 행보는 달러화 강세를 부추긴다.

여기에 국제 유가도 고공행진을 지속하며 갈 길 바쁜 우리나라 수출을 방해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88% 오른 배럴당 79.32달러에 거래됐다. 3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전장 대비 1% 상승한 배럴당 80.80달러에 장을 마쳤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의 수입 가운데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의 수입 금액은 130억6000만달러였다. 이는 2020년 12월 대비 66억달러 급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