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43년 만에 면세점 구매 한도를 폐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정작 혜택을 봐야 할 면세점 업계에서는 ‘반쪽 지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면세점 구매한도는 사라졌지만, 면세점의 매출과 직결되는 면세한도는 600달러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600달러를 넘는 금액은 세금이 추가되면서 인터넷 쇼핑몰이 오히려 더 저렴해질 수 있다. 신고를 하지 않고 면세품을 몰래 들여올 경우, 최대 60%의 가산세까지 물어낼 수 있어, 면세점을 찾는 혜택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지난 21일 서울 시내 한 면세점의 모습. /연합뉴스

이에 면세점 업계는 지속적으로 면세한도 상향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열린 ‘포스트 코로나시대, 국내 면세점 산업의 변화와 과제’를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는 면세한도 상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특히 면세점 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매출 감소 지원을 비롯해, 내년 위드코로나에 따른 여행 수요 폭발에 따라 면세한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구매한도는 풀었지만, 면세한도 상향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면세점에서 명품 살 순 있지만... 600달러 빼고는 세금

25일 기획재정부와 면세업계에 따르면, 전날 오후 발표된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라 내년 3월 관세법 시행규칙이 개정돼 시행되면, 1979년 도입된 면세점 구매한도가 폐지된다. 이에 따라 시내면세점 18개 및 출국장 면세점 19개(2021년 10월말 기준) 모두 5000달러의 구매한도가 없어진다.

하지만 업계는 면세점과 해외에서 구매한 물품이 면세되는 면세 한도액이 상향 조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규제의 산을 넘진 못했다는 평가다. 현재 1인당 600달러의 면세한도가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3000달러(300만원) 짜리 가방을 구입할 경우, 면세한도 초과금액 2400달러에 대해서는 예전처럼 세금을 내야 한다. 여행지에서 선물을 살 경우에는 면세금액이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이에 관련 뉴스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600달러 규제하면 의미없다. 카드지갑도 500달러다”, “면세점에 면세한도를 늘려야 매출이 늘어난다”, “무슨 70년대냐... 외국 나가서 쇼핑하고 오라는 정책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내년 위드코로나 정책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외화 유출 방지와 면세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면세한도 상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중국 정부는 면세 산업을 키워 내수를 진작시키고, 외화 반출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하이난을 중심으로 내국인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면세 특구를 조성했다. 또 면세 한도를 3만 위안(약 520만원)에서 10만위안(약 1730만 원)으로 대폭 상향시켰다. 그 효과로 중국국영면세품그룹(CDFG)은 1년 만에 매출 등급이 3단계 뛰어오르며, 지난해 세계 면세점 1위가 됐다.

◇기재부 “효과 적고, 고소득자 특혜 될 수도”

하지만 기재부는 면세한도 상향은 국민소득, 물가상승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일 한 방송에 출연해 면세점 구매 한도 폐지에 대해서 “일각에서 면세한도 600달러도 올리거나 변화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정부는 600달러를 유지하기로 했다”며 “전 세계적인 면세한도가 500∼600달러라 정부로서는 여러 형평상 600달러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기재부가 면세한도 상향에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환경적 변화 ▲미미한 정책 효과 ▲고소득자 특혜 등이다.

2014년 여행자 면세한도를 상향했을 당시 1인당 국민소득(GNI)은 2만9384달러였다. 지난해에는 3만1755달러로 6년 동안 8.1% 증가했다. 소비자물가지수도 2014년 9월 99.6에서 지난 9월 기준 108.8로 9.2% 증가했다. 소득이나 물가면서 면세한도를 상향해야 할 만큼 큰 변화가 없었다는 의미다.

또 현행 600달러는 경제개발협력기구(548달러), 유럽연합(491달러) 등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다소 높은 수준이라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특히, 우리나라 면세한도는 술·담배·향수(별도면세)가 미포함 된 가격으로 별도 면세 포함시 1000달러 이상 수준이 된다. 미국의 경우, 별도면세를 포함해 총 면세한도가 800달러다.

정부는 면세한도 상향이 해외여행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소득층에 더 집중될 수 있어, 형평성 문제도 우려된다고 봤다. 지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국민여행조사를 보면, 15세 이상 해외여행 경험률은 전 국민의 23.2%였다. 이 가운데 월평균 가구소득 600만원 이상인 사람은 35.1% 비중이었고, 100만원 미만인 사람은 4.8%에 그쳤다.

정부 관계자는 “여행자 1인당 평균 총 구매금액은 약 250달러 수준인데, 면세한도 상향에 따른 구매증가 효과도 크지 않다는 게 내부의 판단”이라며 “부총리의 얘기처럼 당분간은 면세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