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 품귀 대란에 놀란 정부가 희소 산업원료 수급 현황 전반을 점검하기로 하고, 지난달 그 일환으로 이차전지에 들어가는 희소금속 생태계 점검을 위한 긴급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그러나 민·관 연구기관 아무 곳에서도 연구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부랴부랴 재공고를 내고 연구를 맡아줄 전문가를 찾고 있다. 가뜩이나 요소 사태에 늑장 대응해 비판받은 상황에서 유사한 일을 막기 위한 연구까지 늦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8일 충북 청주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제2공장에서 열린 K-배터리 발전전략 보고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일 정부와 학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민·관 연구기관과 대학 연구팀 등을 대상으로 긴급 연구 용역을 재공고했다. ‘이차전지 소재·부품 및 원자재의 수급 동향과 전망’이 연구 주제다. 산업부는 이달 15일까지 신청서를 받은 후 이른 시일 내에 연구진을 선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6개월 안에 연구를 끝내 달라고 주문했다.

산업부는 같은 연구 용역을 지난달에도 발주했었다. 요소·요소수 품귀 사태를 통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희소금속이 우리 사회·경제 시스템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경험한 직후였다. “2년 전 일본의 수출 규제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공급 안정의 중요성을 깨닫고도 요소 대란을 반복했다”는 비판까지 잇따르자 정부는 서둘러 희토류 등 원래부터 집중적으로 관리해온 품목이 아닌 범용 수입 품목을 대상으로 공급망 점검 범위를 확대했다. 이차전지 원료 생태계 파악에 나선 것도 그 맥락에서였다.

당초 산업부는 11월 중 연구 제안서를 받아 검토한 다음 연구진을 선정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입찰자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아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두 번째 용역 발주 결과도 ‘입찰 제로(0)’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연구 용역 입찰과 미 입찰에 따른 재공고는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차전지는 한국이 반도체를 잇는 먹거리로 집중 육성 중인 영역이다. 전동화·무선화·친환경화의 세계적 추세와 맞물려 동력원으로 쓰이는 이차전지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에너지 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 규모는 2020년 461억달러(약 54조4810억원)에서 2030년 3517억달러(약 415조6742억원)로 8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의 한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 중국·일본 등과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며 세계 이차전지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일본 두 나라는 물론 미국과 유럽도 이차전지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며 한국을 빠르게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이차전지 업계와 함께 지난 7월 ‘K-배터리 발전 전략’을 발표한 것도 1위 자리 수성에 사활을 걸겠다는 목표에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 등 이차전지 3사와 소부장 업체 30여 곳이 2030년까지 총 40조6000억원을 투자한다. 이 가운데 20조1000억원은 이차전지 연구개발(R&D)에 투입된다.

문제는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이차전지에 들어가는 핵심 금속 상당수도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이차전지 핵심 원료인 수산화리튬의 수입 의존도는 2018년 66.9%에서 지난해 79.1%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수산화코발트는 52.4%에서 88.5%로, 수산화니켈은 2.5%에서 56.6%로 치솟았다. 황산코발트 수입 의존도도 49.6%에서 81.5%로 올랐다. 이들 원료 대부분은 중국에서 넘어온다. 이번 요소 대란처럼 중국이 원료 수출을 통제하며 ‘한국 길들이기’에 나설 경우 갈 길 바쁜 국내 산업계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여름 희소금속 비축 제도를 강화하겠다고 업계에 약속한 바 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올해 8월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운영하는 전북 군산비축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기차 등 신산업 성장과 전 세계적 탄소중립 추진에 따라 희소금속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며 “금속 비축 종합 계획을 올해 말까지 수립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