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최근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대체불가능토큰(NFT)’를 놓고 2차전에 나섰다. 금융위는 NFT에 대해서 일부 과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기재부는 NFT의 정의를 판단하는 게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선과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고 내년 시행될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마저 유예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민감한 NFT 과세 문제를 떠안기 싫은 두 부처가 업무를 서로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NFT는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을 대표하는 토큰을 말한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지만, 기존의 가상자산과 달리 디지털 자산에 별도의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하고 있어 상호교환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최근 미술, 음악 등 예술계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위메이드(112040)의 ‘미르4′ 등 게임을 중심으로 NFT 활용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NFT 기반의 메타버스 플랫폼(NFT 게임)을 운영하는 더 샌드박스(The Sandbox)가 발행하는 샌드박스 코인은 지난 한 달 동안 800% 넘게 상승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NFT 거래소 '오픈씨'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작품들. /웹사이트 캡처

29일 기재부와 금융위, 국회 등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해 “NFT는 다양한 양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가상자산 정의에 포섭되는 경우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법안(가상자산업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가상자산업법 심사 과정에서 정부의 기본 방향 및 쟁점을 설명한 것이다. 이어 금융위는 별도로 보도설명자료도 배포했다. 자료에는 “NFT는 일반적으로 가상자산으로 규정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결제·투자 등 수단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가상자산에 해당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결제·투자 수단으로 사용되는 NFT의 경우, 과세 대상이 되는 가상자산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NFT가 결제·투자 수단이 될 수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앞서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도 17일 제1법안소위에 출석해 “현행 규정으로도 NFT에 대한 과세가 가능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기획재정부가 과세 준비 중에 있다. (과세를) 내년에 할지, 하지 않을지 국회 결정에 따라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규정에 따라 NFT도 과세 처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NFT 중 과세 대상이 있다면 과세당국인 기재부가 이에 대한 과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도 “원칙적으로 NFT 대부분은 가상자산이 아니지만 일부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에 해당한다는 뜻”이라며 “어떤 NFT를 과세할지는 최종적으로 과세 당국이 결정할 부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금융위 산하의 FIU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관리감독과 자금세탁방지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기재부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기재부는 NFT의 개념이 가상자산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월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NFT에 대해 “현재 가상자산이 아니다”라고 규정한 바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특금법상 가상자산 가이드라인 조건을 보면 NFT는 조건에 따라 보는 개념이 달라질 수 있어, NFT 중 어떤 것을 가상자산으로 볼지를 금융위에서 알려줘야 과세를 할 수 있다”며 “다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규정을 명확히 해놓은 국가가 없고, 실제 NFT가 미래에 거래 수단으로 쓰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이 다소 필요한 상황이다. 특금법을 담당하는 것은 금융위이기 때문에, NFT의 가상자산 포함 여부부터 결정돼야 할 사항”이라고 했다. 이는 특금법을 관할하는 금융위가 검토해, NFT 중 어떤 게 가상자산에 해당하는지 먼저 확정하면 이후에 과세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과세시기를 내년에서 내후년으로 미루자는 정치권의 주장으로 가상자산 과세를 둘러싼 혼란이 커지고 있는데, NFT를 두고도 정부 안에서조차 엇박자가 나는 상황이다. 기재부와 금융위는 지난 4~5월 가상화폐 주무부처 지정을 놓고도 신경전을 벌여왔다. 정부는 2017년 가상화폐 이슈가 제기된 이후 지금까지 국무조정실이 컨트롤타워가 되고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총 10개 관련 부처가 참가하는 협의체 형식으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지난 4월 2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주무부처는 금융위가 되어야 한다”고 밝히면서 부처 간 이견이 다시 분출됐다.

일각에서는 국회에서 가상자산 과세 유예가 추진되는 만큼, 이번 기재부 입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지난 24일 내년부터 실시될 예정인 가상자산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를 유예하는 방안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 등을 논의했다. 기재부의 반대로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여야가 합의한 만큼 오는 29일 마지막 조세소위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가상자산의 과세가 유예될 경우, 자연스럽게 NFT 과세에 대한 이슈도 잠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두 부처의 사정을 잘아는 한 관료는 “가상자산과 신용카드 캐시백에 이어 NFT까지 기재부와 금융위가 반복적으로 충돌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는데, 국민들이 보기에는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며 “가상자산 과세가 유예될 경우,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가상자산과 NFT 등의 과세를 준비할 시간은 충분히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기재부와 금융위, 국회 모두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030세대 표심에 역행하는 NFT 등 가상자산 과세에 몸사리기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전직 경제부처 관료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과세 문제에 여론 눈치를 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조금 있지만, 경제부처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