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요소수 품귀 대란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제2의 반도체로 집중 육성 중인 이차전지에 들어가는 희소금속 생태계 점검 연구에 나선다. 산업 원료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이 자원민족주의가 짙어지는 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하려는 목적에서다. 지난여름 희소금속 비축 제도 강화를 약속했던 정부가 여태껏 뭐 하다가 이제야 연구에 나서냐는 비판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8일 충북 청주시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제2공장에서 열린 K-배터리 발전전략 보고 'K-배터리, 세계를 차지(charge)하다' 행사에 참석해 오토바이용 교체 배터리를 들어보고 있다. / 연합뉴스

18일 정부와 학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민·관 연구기관과 대학 연구팀 등을 대상으로 긴급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이차전지 소재·부품 및 원자재의 수급 동향과 전망’이 연구 주제다. 산업부는 이달 중 신청서를 받아 이른 시일 내에 연구진을 선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6개월 안에 연구를 끝내 달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다급히 이차전지 원료 생태계 파악에 나선 건 최근 요소·요소수 품귀 사태를 통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희소금속이 우리 사회·경제 시스템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경험해서다. 2년 전 일본의 수출 규제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공급 안정의 중요성을 깨닫고도 요소수 대란을 반복했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정부를 급하게 만들었다. 산업부는 이달 초 희토류 등 원래부터 집중적으로 관리해온 품목이 아닌 범용 수입 품목을 대상으로 공급망 점검 범위를 확대했다. 이번 연구 용역도 그 일환이다.

특히 이차전지는 한국이 미래 먹거리로 집중 육성 중인 시장이다. 전동화·무선화·친환경화의 세계적 추세와 맞물려 동력원으로 쓰이는 이차전지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에너지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 규모는 2020년 461억달러(약 54조4810억원)에서 2030년 3517억달러(약 415조6742억원)로 8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중국·일본 등과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며 세계 이차전지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일본 두 나라는 물론 미국과 유럽도 이차전지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며 한국을 빠르게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이차전지 업계와 함께 지난 7월 ‘K-배터리 발전 전략’을 발표한 것도 1위 자리 수성에 사활을 걸겠다는 목표에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 등 이차전지 3사와 소부장 업체 30여 곳이 2030년까지 총 40조6000억원을 투자한다. 이 가운데 20조1000억원은 이차전지 연구개발(R&D)에 투입된다.

문제는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이차전지에 들어가는 핵심 금속 상당수도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이차전지 핵심 원료인 수산화리튬의 수입 의존도는 2018년 66.9%에서 지난해 79.1%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수산화코발트는 52.4%에서 88.5%로, 수산화니켈은 2.5%에서 56.6%로 치솟았다. 황산코발트 수입 의존도도 49.6%에서 81.5%로 올랐다. 이들 원료 대부분은 중국에서 넘어온다. 이번 요소 대란처럼 중국이 원료 수출을 통제하며 ‘한국 길들이기’에 나설 경우 갈 길 바쁜 국내 산업계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올해 여름 이미 희소금속 비축 제도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던 정부가 요소 사태 이후 생태계 점검 연구에 착수한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지난 8월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운영하는 전북 군산비축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기차 등 신산업 성장과 전 세계적 탄소중립 추진에 따라 희소금속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며 “금속 비축 종합 계획을 올해 말까지 수립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문 장관이 밝힌 금속 비축 종합 계획에는 평균 비축 일수를 현 56.8일에서 100일로 확대하고, 조달청과 광해광업공단으로 이원화된 비축 기능을 광해광업공단으로 일원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진다. 문 장관은 “하반기 중 ‘민관 희소금속 산업발전 협의회’를 구성해 희소금속 공급망 안정화와 기업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하겠다”고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