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의 대들보 역할을 해왔던 ‘반도체’ 수출에 위기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왔지만, 전년 대비 성장폭은 전달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급증했던 반도체 수요가 정점을 지나, 본격적인 내리막을 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늘면서 내년에는 반도체 가격이 올해보다 20%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우리나라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에 높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 9월 전체 수출액은 558억3000만 달러였다. 이중 21% 수준인 122억3000만 달러가 반도체였다. 자동차 산업이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수출 둔화는 수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출 호조에 힘입은 정부의 ‘4% 성장’ 목표 달성이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의 모습.

◇9월 D램 수출 증가율 ‘반토막’ 정점 찍었나... 가격 하락도 우려

15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D램 반도체 수출은 37억8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8.7% 증가했지만, 수출 증가폭이 크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에는 37억6000만 달러를 수출해 전년 대비 55.1%의 성장을 거뒀다. 7월에도 D램 수출액은 전년 대비 39.8% 늘었다. 불과 한 달 사이 수출 증가률이 26.4%포인트(p)나 줄어든 것이다.

D램 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등 전체 반도체 수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난 9월 전체 반도체 수출은 122.3억 달러로 전년 대비 27.4% 늘었다. 하지만 8월(42.2%)에 비해서는 증가율이 14.8%p 줄었다. 반도체 수출액 증가률이 20%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5월 4개월 만이다.

그간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산업이 활성화 되고 재택근무 증가 등으로 PC·노트북 교체가 증가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증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반도체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피크 아웃(Peak Out·경기가 정점을 찍고 하강)’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자료=산업부

이러한 징후는 가격 전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보고서를 통해 내년 D램 시장의 평균판매가격(ASP)이 올해보다 15%에서 많게는 20%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내년 D램 공급 비트그로스(비트 단위 환산 증가율)가 올해 대비 17.9%에 달하지만, 수요 비트그로스는 16.3%에 그칠 것이라고 봤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주요 D램 고객사들이 올해 초 공급망 차질에 대비하면서 재고 확충에 나선 상태”라며 “또 올해 들어 스마트폰이나 PC 등 주요 메모리반도체 수요처의 출하량이 급증하면서, 하반기와 내년의 경우 출하량이 줄어들면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메모리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로 세계 D램 시장을 1·2위로 주도하는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6만 전자’까지 추락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약세도 이 같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반도체’만 믿었는데, 수출 쇼크오나... 이상 징후에 환율은 급등

문제는 올해 반도체가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20%에 육박한 만큼, 반도체가 흔들릴 경우 수출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 가격이면, 가뜩이나 원자재값 급등으로 우려되는 무역수지 흑자폭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산업부는 수출 증가률은 줄었어도, 수출액이 증가한 만큼 아직은 피크아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출액 자체는 증가했고 증가률은 반도체 가격 등 여러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관점에서 피크아웃으로 볼 상황은 아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컨퍼런스콜을 앞두고 있어. 향후 시장 상황에 대한 언급이 있을텐데 좀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산항 신선대·감만 부두의 모습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최근 환율이 급등하는 배경에도 한국의 반도체 등 수출 호황이 정점을 찍고 둔화될 수 있다는 상황이 선반영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펀더멘탈을 가늠할 수 있는 수출 지표에 이상 징후가 보이면서, 외국인들의 자금 이탈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홍철 DB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조기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과 미국 외 지역의 성장세 하향을 비롯해, 반도체 등 한국의 수출 지표도 둔화되고 있다”며 “1200원까지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의 모습은 한국의 수출이 전년대비 0% 성장한다는 것을 선반영 한 수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