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강세 흐름이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이번 주 초 원화 약세 저지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200원선이 위협받고 있지만, 외환당국은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시장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지난 12일 15개월만에 달러 당 1200원을 돌파한 원·달러 환율은 소폭 조정된 1198원에서 마감했지만, 13일 1195원을 웃돌면서 추가 상승을 엿보고 있는 중이다.

이날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1199.0원에서 출발한 원·달러 환율은 10시34분 현재 1195.9원에서 거래되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전일보다 20포인트 가량 오른 2940선에서 거래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전일대비 2.9원 하락하고 있지만,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재개될 경우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감지되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자산매입축소) 등 대외적인 변수와 국내 경기 회복세 둔화라는 내부적 요인으로 원·달러 환율은 연내 1210원 선 상승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일각에서는 원자재값 급등에 환율까지 상승하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인 수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 무역구조 특성상, 원재료나 중간재를 수입해 중간재나 완제품으로 수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자재값 급등으로 가격경쟁력을 잃을 수 있고, 무역수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닥 지수,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있다. /연합뉴스

환율 상승 등 원화 값 급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외환당국에서는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대외 여건 영향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유가 상승과 미국의 테이퍼링(자산축소) 조기 시행 예고에 따른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전망 부각, 미국 국채 금리 상승 등으로 강달러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미국 달러지수는 이날 오전 9시47분 기준 94.48로 전날보다 소폭(0.04%)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 11일 7년 만에 80달러 선을 넘어섰다. 이날 오전 9시50분 기준 WTI 가격은 80.64달러로 전날 대비 0.14% 올랐다. 이런 기조 속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한층 커지면서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유동성 위기로 파산설에 휩싸인 중국 헝다 그룹이 전날 달러 회사채에 대한 1770억원대 이자를 지급하는 데 실패한 것도 환율에 영향을 줬다. 채무불이행 위기가 다른 부동산 업체로까지 줄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이같은 대외 악재로 인해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외환당국의 대응도 주목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달러 당 1200원선 돌파를 외환시장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재 외환당국에서는 원·달러 환율 1200원선이 위협받는 것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의 원·달러 환율 상승이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연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우려 등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 등 글로벌 외환시장 움직임과 방향성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CDS프리미엄 등 대외 신인도 지표가 아직까지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원화의 대외 신인도 문제와 최근의 환율 상승을 연계할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소비자물가 높일 우려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최근 이런 불확실성 증대에도 불구하고 CDS프리미엄, 차입가산 금리, kp(국내은행이 발행한 한국계 외화채권) 스프레드 등이 안정적인 모습”이라며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필요한 경우에는 시장 안정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억원 기재부 차관도 “견조한 수출 증가세와 4% 이상의 성장률 전망 등 기업실적의 기반이 되는 실물경제 여건도 전반적으로 양호하며 역대 최고수준의 국가신용등급 및 외환보유액과 함께 CDS프리미엄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의 대외신인도와 대외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 등도 흔들림 없이 유지·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 외환 유동성 수급구조에 큰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은 것도 외환당국의 정중동 행보에 한 몫하고 있다. 다만, 외환당국 관계자는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는 대외 여건이기는 하지만, 환율 상승 속도가 다소 빠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외화유동성 수급 여건에 따른 시장 참가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대응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에서는 당분간 환율이 1200원선을 오르내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환율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경우, 우리나라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화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고 수출 채산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달러 강세인 상황에서는 원자재 구매비용이 증가하고 외화 부채에 대한 이자 지급 규모가 커지게 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환율 대응을 위해 기업에서 달러를 비축해 대응하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달러의 급등과 급락하는 경우에는 대응이 어렵다.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문홍철 DB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통화 정책이 긴축적으로 나오고 있고 미국외 국가의 경기하강 속도가 매우 빠른 상황”이라며 “한국도 수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1200원은 수출이 전년 대비 0% 성장한다는 것을 선반영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올해는 환율이 1200원 안팎에서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만 내년 미국 연준의 긴축과 미국 외 지역의 성장이 반등하지 않는다면 환율 상승세는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