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획재정부의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기재부 탈출’이 화두다. 고위직 공무원의 등용문인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공무원이 된 젊은 사무관들이 최근 연이어 기재부를 떠난 것이 한동안 관가에서 화제였는데, 이제는 행시 출신이 아닌 주무관급에서도 기재부를 떠나려는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무관에 시보까지’ 기재부 탈출 이어져

2일 기재부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의 공무원 전입 공고에 기재부 일부 주무관들이 지원했다. 현재 서울시는 1차 합격자에게 면접 일정을 통보한 상황이다. 행시 출신 사무관들은 물론, 주무관들까지 기재부를 떠나려는 시도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 컨트롤타워 기재부의 사기 저하를 방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 전경./기재부

보통 6급~7급 공무원을 뜻하는 주무관들은 일반적으로 근무 부처를 잘 옮기지 않아왔다는 게 기재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행시 출신 5급 사무관들이 다른 부처로 전입을 시도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앞서 박영선 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의 현직 시절, 한 기재부 공무원이 중기부로 전입 신청을 했으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만류했던 사례도 전해진다. 특히 세종시 공무원들에게 서울시청이나 국방부 등 서울에 있는 조직이 인기가 많다.

주무관들 이전엔 젊은 사무관들이 잇달아 기재부를 나가 새로운 자리로 둥지를 틀었다. 기재부의 ‘젊은 피’들이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 자리를 내려놓고 외부로 나가는 사례가 잇따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학계나 민간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경력을 가진 과장 또는 국장급 간부들이었다.

기재부 내에서는 작년 임용된 행정고시 63기 ‘시보(수습)’ 사무관이 최근 네이버로 이직한 충격도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10월이면 수습 꼬리표를 떼고 정식 발령을 받아 공직 생활을 할 예정이었던, 갓 입직한 젊은 사무관이었다. 한 기재부 공무원은 “네이버로 이직한 수습사무관은 코딩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능력있는 직원’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10월 경제구조개혁국 출신의 김가람 기재부 사무관은 공직 생활 10년을 끝으로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사무관이 자리를 옮긴 국회 보좌진 국회 비서관은 사무관과 같은 5급 공무원이지만, 계약직이기 때문에 고용 안정성이 낮다. 기재부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김 사무관이 사표를 냈을 때 내부에선 ‘일 잘하는 친구가 나갔다’는 탄식이 많았다”며 “최근 굵직한 이슈마다 청와대와 여당이 밀어붙이면 기재부는 결국 이를 따르는 식의 사례가 많아져 우리도 회의감을 느끼는데, 젊은 친구들은 오죽하겠나”라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6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021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윤호중 원내대표(왼쪽)와 박완주 정책위의장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재부, 국회ATM·미달 부처 오명... “사명감을 잃었다”

경제 정책이 청와대와 여당 등 정치권 중심으로 결정되면서 기재부 구성원들이 무력감을 느끼는 것도 젊은 사무관들이 떠나는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기재부는 정부의 주요 사무에서 빠지는 일이 없다고 해서 ‘알파와 오메가’라고 불렸다. 기재부 차관을 거쳐 다른 부처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게 상식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180석의 거대 여당이 탄생하면서 ‘하명(下命)식 정책’이 쏟아졌다. 홍 부총리는 여러차례 소신을 발휘했지만, 결과는 여당의 뜻대로 흘러갔다. 관가에서는 홍 부총리의 이런 모습 때문에 수습 사무관들이 기재부를 손절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홍 부총리의 현재를 ‘나의 미래’로 수습 사무관들이 오버랩한다는 것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관료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승진도 다른 부처에 비해 지나치게 느리다는 점도 기재부 사기 저하의 한 요인이다. 간부급의 심한 인사 적체 현상을 보면 일하는 보람이 사라진다는 게 기재부 2030대 직원들의 탄식이다. 현직 기재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사명감을 잃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올해 5급 공채 재경 직렬에서는 기재부가 1순위 미달 부처 명단에 올리기도 다.

잦은 야근도 문제다. 지난해와 올해 총 6번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과 각종 대책 회의가 늘면서 야근이 늘었다. 이미 야근으로 단련된 과장들 조차 “추경에 회의 안건을 만드는 일이 버겁다”고 하는 상황이 됐다.

한 30대 사무관은 “그간 민간기업으로 취업한 친구들은 고액 연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기회 비용을 포기하고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으로 기재부를 선택했다”며 “하지만 최근 선배들이 퇴직 후에 갈 곳도 마땅치 않아 보이고, 다른 부처 국장급이 우리 과장과 행시 동기거나 후배인 경우까지 보이는 등 승진도 느려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