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만료로 공석이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비상임이사에 청와대 출신인 김유임 전 여성가족비서관이 선임된 것으로 확인됐다. 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으로 LH 개혁안이 이달 말 발표될 것으로 예정된 가운데, 또 다시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비상임이사로 선임되면서 LH 내부에서도 술렁이고 있다.

그간 LH는 낙하산 인사와 부실 이사회 등으로 내부 통제 장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조직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권 캠코더 인사를 경영진으로 선임하는 관행부터 근절해야 하는데, 이에 역행하는 인사로 오히려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기획재정부와 LH 등에 따르면, LH는 지난 10일 김 비서관을 포함해 비상임이사 3명을 새로 선임했다. 김 비서관은 지난 5월까지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비서관실 여성가족비서관으로 재직했다. LH의 비상임이사 선발절차가 지난 6월에 시작된 만큼, 사실상 청와대를 나온 뒤 곧바로 LH 비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긴 셈이다. 김 비서관은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 LH자회사인 LH주거복지정보 사장으로도 근무했다.

김유임 신임 LH 비상임이사가 지난해 2월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이전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여러번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김 비상임이사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고양시의원을 역임했다. 2006년에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고양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경기도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고양시장 경선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민주당의 여성리더십센터장을 맡아왔다. 특히 김 이사의 최근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선 캠프 여성미래본부에서 활동 중이다.

김 이사 이외에, 권정순 전 서울시 정책특별보좌관과 윤면식 전 한국은행 부총재도 LH 비상임이사로 선임됐다. 권 이사는 고 박원순 전 시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이른바 ‘6층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었다. 참여연대 출신인 권 이사는 2016년 이후 서울시 민생정책자문관, 민생정책보좌관을 거쳐, 지난해 정책특보로 일했다. 윤 이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8월 한은 부총재에 임명된 뒤, 지난해 8월 임기가 만료됐다.

LH 한 직원은 “개혁안이 발표되기 직전인 시점임에도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가 반복됐다”며 “당장 개혁안 발표로 조직개편과 구조조정이 임박한 상황인데,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는 모습에 정부의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동안 LH 상임감사와 비상임이사는 정권의 보은인사 ‘텃밭’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높은 연봉과 전용차량, 업무추진비까지 대우는 좋지만 주목도가 떨어져 업무 부담이 덜하고, 대통령이나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종 임명하는 자리가 많아 보은인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간 LH의 상임, 비상임이사의 이력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 캠프와 고 박원순 시장 캠프 출신 등이 이름을 올려왔다.

이렇듯 관례적으로 선거 뒤 보은 성격의 감사로 내려꽂히니, 이사회 본연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LH는 지난해 10번의 이사회 중 다섯 번은 서면으로 대체했다. 전체 35개 안건 중 31개 안건(88%)은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LH는 상임이사와 감사에게는 각각 1억원, 비상임이사에게는 3000만원씩을 지급한다. 문제는 지난해 35건의 안건을 논의하면서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상임이사 선임 권한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회재정부 장관에 있다. LH의 비상임이사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홍 부총리가 임명하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이달 말 확정을 목표로 LH 조직개편 등 공공기관 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 손으로 LH 개혁안을 추진하는 기재부가 다른 한 손으로는 정치권 캠코더 인사를 공사 경영진에 투입하며 조직 개혁에 역행하는 구태 인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LH는 이런 지적에 “LH 비상임이사는 공개공모 절차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의결 과정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종 임명한 것으로 공정한 절차를 통해 진행됐다”며 “이사회도 코로나 19 확산방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일부 서면으로 개최했고, 안건도 전에 충분히 안건을 논의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LH 사태는 이사회나 직원, 조직 간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문제에서 비롯됐는데, 또 다시 캠코더 낙하산 인사를 했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며 “LH와 같은 공기업은 정치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견제 장치 마련과 작동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